일본판 대왕고래, 희토류 독립 희망되나
일본 EEZ 해역 고농도 희토류 세계 3위 규모 매장 … 2010년 중국과 충돌 이후 적극 개발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일본 등 서방의 대중국 희토류 독립이 일본을 통해 가능할까.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달 정상회담을 갖고 별도의 희토류 공급망 관련 각서를 체결하면서 일본의 희토류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영토인 미나미도리시마 인근 해역에서 내년 1월부터 2월까지 희토류 시범 채굴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 해역에 고농도의 희토류를 함유한 퇴적층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트럼프, 반중 희토류 동맹 가속화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사이에 두개의 정상간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하나는 지난 7월 양측이 합의한 일본의 대미투자와 관련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미일간 희토류를 포함한 중요광물의 확보에 관한 각서’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에서 "미나미도리시마 주변 해역에는 대단히 많은 희토류층이 있다"면서 "중요 광물과 자원을 미국과 함께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미국과 일본 정상이 중국을 염두에 두고 희토류 동맹에 서명했다”며 “양국 정부가 희토류의 채굴과 가공에서 투자사업을 함께 선정하고 자금도 투입하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희토류 매장량 세계 4위인 호주와 85억달러(약 12조원) 규모의 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동개발 합의서에 서명했다.
주요 선진7개국(G7) 에너지 관련 장관들도 지난 31일 캐나다에서 회의를 갖고 ‘핵심광물 생산 동맹’을 체결했다. 지난 6월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체결한 ‘핵심광물 행동계획(CMAP)’의 후속 조치에 해당한다. G7국가들은 이번 합의를 통해 향후 25개의 신규 투자와 함께 참여국 간 ‘거미줄식’ 파트너십을 맺기로 했다.
AFP통신은 이러한 서방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해온 희토류를 포함해 첨단기술 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다양한 금속의 생산·개발 내용을 포함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G7 의장국인 캐나다 팀 호지슨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합의가)세계에 매우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시장 집중도와 의존도를 줄이는 데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미국이 주도하고 G7과 호주 등이 참여하는 ‘반중국 희토류 동맹’의 성공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이들 협정이 다자간 형태로 결합돼 자금과 자원이 통합된다면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며 “앞으로 트럼프행정부 내에서 이러한 공급망 협정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탈중국 공급망 재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전망이 다수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새로운 희토류 광산 개발에는 통상 10년이 걸리고, 미얀마와 중국 이외 지역의 매장량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희토류 정제시설 건설에만 5년이 소요돼 공급망 재편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일본 희토류 독립 집념 성과낼까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와 도쿄대학 등 공동조사팀은 2013년 고농도 희토류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저 6000m 심해에 1600만톤 가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3위 수준의 매장량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을 예고한 시범 채굴은 해저 5500m 이상의 깊은 바다 밑에 있는 다량의 퇴적물을 지상으로 퍼올리는 것이 1차적 목표다. 당초 일본정부는 본격적인 시범 채굴을 지난해 실시하려고 했지만 영국 기업에 발주한 채굴 파이프의 제조가 늦어지면서 내년으로 늦춰졌다. 일본측은 이번 시험 채굴에만 파이프 조달 등에 최소 120억엔(약 1120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는 심해 채굴 기술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수심 6000m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는 희토류층에 대해 자율형무인잠수기(AUV)인 ‘신류6000’으로 자원량의 조사에 성공한 적이 있다. 2022년 8~9월에는 이바라키현 앞바다 수심 2500m에서 해저 퇴적물의 채굴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일본 내각부의 ‘전략적이노베이션창조프로그램(SIP)’ 일환으로 추진하는 과제다. JAMSTEC와 도쿄대학 등 공동조사팀에 따르면 매장된 희토류의 품질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사팀은 매장된 희토류층이 7000ppm을 넘는 초농도를 보여 중국의 지상 광산에 매장된 희토류에 비해 20배 이상 순도가 높다고 추정했다.
특히 이 해역에는 전기자동차(EV) 모터용 자석에 들어가는 디스프로슘과 원자로를 제어하는 재료에 쓰이는 가돌리늄 등 다양한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돼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금까지 조사에 의하면 중희토류가 풍부하고, 방사선 등 유해물질을 거의 포함하지 않은 수준의 고품질로 확인됐다”며 “내년부터 시행하는 시범 채굴을 통해 이 해역에 매장돼 있는 희토류의 자원부존량을 구체적으로 추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카무라 겐타로 도쿄대학 교수는 민영방송 TBS와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에도 있는 그런 희토류 광석과는 다르다"며 "해저에 있는 희토류 보물과 같아 실용화를 위한 작업에 빨리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희토류 개발에 다른 어느나라보다 힘을 쏟는 데는 중국과 이미 한차례 충돌을 겪고 심각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0년 중국과 일본 양국 사이의 영토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에서 일어난 충돌로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전면 금지하자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후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독자적인 자원 개발에 나섰다. 도쿄대학 등 연구소와 에너지 관련 기업, 대형 종합상사 등도 개발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
일본 도쿄증시에서도 내년 본격적인 시범 채굴 앞두고 관련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등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플랜트 분야에서 앞서가는 동양엔지니어링은 해저 깊은 곳으로부터 채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석유자원개발사 등 4개사는 2015년 ‘차세대해양자원조사기술연구조합(JMARES)’을 설립해 정부가 추진하는 SIP와 연계해 기술개발 등을 주도했다. 미쓰이해양개발도 도쿄대학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 난제도 많다는 지적이다. 해저 6000m 안팎의 심해에서 사실상 진흙덩어리를 끌어올리는 것부터 이를 채굴해 분리하고 정제하기까지 기술적 난제가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채굴과 운반에 들어가는 비용과 상업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며 “특히 해저에서 끌어올린 이후 희토류를 정제하는 기술은 지상에서 채굴한 것보다 순도를 높이는 기술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정부는 시범 채굴을 거쳐 2027년부터 하루 350톤 가량을 본격 채굴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28년 이후에는 상업적인 생산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도쿄대학 연구팀의 추산에 따르면 하루 3500톤 가량을 채굴할 수 있으면 과거 20년 정도의 평균 가격 수준으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윤곽 드러나는 일본의 대미 투자
한편 일본정부가 미국에 약속한 5500억달러 대미 투자 내용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 주일미국대사 관저에서 일본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만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도요타 아키라 도요타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도쿠나가 도시아키 히타치제작소 사장, 구스미 유키 파나소닉홀딩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만약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나에게 직접 전화하라”면서 대미 투자를 독려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최대 250억달러 규모의 전력 인프라 구축과 운용에 투자하는 것을 검토하고있다. 파나소닉은 남는 전력을 충전하는 시스템 등에 최대 15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전선 제조업체 후지쿠라는 데이터 교환의 효율화에 필요한 광케이블을 공급한다. 무라타제작소와 TDK 등 전자부품 기업도 AI관련 사업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앞서 양국 정부는 28일 정상회담에서 4000억달러(약 570조원)에 이르는 ‘미일간 투자에 관한 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자료에는 ●원자력 발전 등 에너지 ●인공지능(AI)을 위한 전력개발 ●AI인프라 강화 ●중요 광물자원 등 크게 4개 분야, 21건의 대미 투자 후보가 목록에 올라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오찬 회동에서 일본의 대미투자 실적 등을 담은 도표를 보여주면서 미국 경제에 대한 공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