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소비시장”…미 중산층 지갑 닫는다
골드만, 소비 위축 지목
대형 소비주 주가 급락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소비 둔화가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층으로 번지고 있으며 특히 25~35세 연령대에서 지출 축소가 두드러진다고 경고했다. 최근 2주간 비필수소비재 업종(XLY)은 광범위한 지수 대비 약 5%, 이번 주에만 4%가량 뒤처졌고, 필수소비재 업종(XLP)도 이번 주 5%, 2주 누적으로 7.5% 낮은 성과를 보였다.
기업들의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경영진의 비관론이 확산됐다. 크래프트하인즈(KHC)의 카를로스 에이브럼스-리베라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지금 ‘수십년래 최악의 소비자 신뢰’를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 비중이 큰 외식·소매 기업의 부진도 두드러졌다. 멕시코 음식 프렌차이즈 치폴레(CMG)는 주가가 17% 급락했다. 회사는 “중하위 소득층 고객의 방문 빈도가 줄었다. 이 계층은 실업,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실질임금 둔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폴레는 핵심 고객층을 “연소득 10만달러 미만, 25~34세”로 규정하며 경쟁 식당 대신 대형마트로 소비가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지중해 음식 프렌차이즈 카바(CAVA)는 11% 하락했고, 일부 생활·식료 소매주도 두 자릿수 약세를 기록했다.
대형 지출의 지연과 ‘가성비’ 선호는 전반적 흐름으로 나타났다. 캠핑월드(CWH)는 “가격 인상, 고용시장 불확실성,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자 저항이 이어지며 최근 신규 RV 판매가 전년 대비 감소했다”고 밝혔다.
치즈케이크팩토리(CAKE)는 “직전 분기 동일점포매출이 1.1% 증가했지만, 10월 예비 수치는 2% 감소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자동차 부품 소매업체 오라일리는 3분기 중반부터 DIY 거래가 둔화하는 “완만한 압력”을 체감했다고 보고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실적 시즌부터 “회사별 이슈나 날씨 탓”으로 돌리던 단계가 지나, 더 많은 기업이 중산층(특히 25~35세) 소비자의 약화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고가 시장이나 규모의 경제를 갖춘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버텼다. 비자(V)는 “소매·서비스·여행·연료 등 전 부문에서 폭넓은 강세를 목격했다. 비필수·필수 지출 모두 직전 분기 대비 증가했다”고 밝혔다.
스타벅스(SBUX)는 “최근 분기 연령대 전반에서 거래와 매출의 ‘매우 긍정적 반응’을 확인했다”고 했고, 브링커인터내셔널(EAT)은 “칠리스는 모든 소득계층에서 매출이 늘었다. 특히 연소득 6만달러 미만 가구에서 증가세가 가장 빠르다”고 설명했다.
결국 ‘K자형 소비’가 뚜렷해지고 있다. 중하위 가격대 외식·레저·생활소비는 압박이 커지는 반면, 상위 소득층을 겨냥한 서비스와 가격 결정력이 강한 대형 브랜드는 버티는 구도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지표에서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고용 불안, 실질임금 둔화가 중산층 지출을 얼마나 제약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경고는 투자심리에도 즉각 반영됐다. 보고서 발표 전후로 비필수·필수소비재 섹터 모두 시장 평균보다 크게 뒤처졌고, 실적이 약한 기업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반면 실적이 예상치를 웃돈 기업도 주가 상승은 제한적이었다. 기업들이 “최악의 소비시장”을 호소하는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중산층 소비 둔화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