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의 전자결제, 발전과 통제의 양면

2025-11-04 13:00:02 게재

얼마 전 북한은 전자지갑 가입자 수가 수백만명에 이른다고 홍보했다. 북한의 전자지갑은 전자지불체계로 ‘삼흥전자지갑’ ‘전성전자지갑’ ‘만물상전자지갑’ ‘화원전자은행’ 등이 있다. 삼흥전자지갑은 택시 버스 지하철 등 교통비 결제, 곡물쿠폰 구매, 전화 및 전기요금 납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알려졌는데 다른 전자지불체계에서도 이런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자지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전자지갑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의 진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전자지갑과 같은 정보화의 발전은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목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북한 당국은 정보화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것일까. 과학기술의 발전은 현 시대 모든 나라의 중요한 국가적 과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김정은 시대 들어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데 과학기술 발전은 핵심적 동력이다.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경제성장, 국방공업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10월에‘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2025’를 개최하는 등 정보화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정보화와 정보기술 발전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는 정보화 수준을 높여 국가정책 추진의 효율성과 질적 수준을 제고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도를 보여준다.

정보화 기술 발전은 통제수단의 발전 의미

그런데 정보화의 기술은 어느 정도 발전하였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정보화가 일상적 체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전력 통신 등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하지만 컴퓨터 보급률이나 전력사정 등 일련의 정보화를 뒷받침해주어야 할 물적기반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주민들이 일상적 수준에서 정보화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이 정보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 도구인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의 보급률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경제적 수준과 지역적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크다. 통일부에서 2024년에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이후 탈북자 기준 가정 내 휴대전화 보유율은 34.7%, 컴퓨터 보유율은 33.3%에 그친다.

정보화는 우리의 일상을 효율적으로 영위하게 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일상을 통제 또는 위협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북한은 경제관리정책에서 정보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관리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관리의 통제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다.

북한이 추구하는 계획경제는 기본적으로 통제성을 전제하고 있기에 정보화는 계획경제 성공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국가통제를 벗어나려는 개인과 기업의 소득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통제함으로써 일상적 또는 비사회주의적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장악력을 높일 수도 있다. 주민의 실질적인 소득 수준, 경제활동이나 물량·매출·이윤 등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전자카드, 전자결제 등의 정보화 기술은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또한 정보화는 주민의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주민 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보화 기술의 발전은 주민들이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고 사회적 공간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북한과 같이 국가가 정보화 기술과 체계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화의 진전은 주민 생활 전반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망을 더욱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민과 기업, 통제 피할 새 공간 만들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북한 사회의 다양한 경제사회적 통제 하에서도 주민과 기업은 통제를 벗어나는 삶의 기술을 체득하고 실천해왔다. 지금의 정보화를 통한 통제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국의 통제에 대한 일상적 저항이 또다른 경제적 왜곡과 새로운 기회와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북한 당국의 의도가 구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통제와 자율이라는 정보화의 양면성을 누가, 어떻게 더 잘 이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