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결과, 예산안 심사 쟁점 부상

2025-11-04 13:00:03 게재

국회 예산정책처 “구체적 사업계획 확정, 제출해야”

국회 비준도 난제 … 여 “정부 요청 봐야” 유보적

2026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한미 관세협상 결과가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예산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만큼 세부 내역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합의 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주 중 한미 관세협정 등을 담은 팩트시트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악수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국회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의장접견실에서 열린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6년 예산안은 지난달 29일 관세협상 합의 전에 편성됨에 따라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산업통상부는 관세 협상 합의 결과를 고려해 대미 투자 정책금융, 한미간 조선협력 지원 사업 등의 예산안 및 사업계획을 조속히 변경해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정부는 2026년 예산안에 관세협상 이후 대미 투자지원을 위해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에 총 1조9000억원의 정책금융 패키지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무역보험기금출연 사업에 5700억원, 통상 대응 프로그램 지원(한국수출입은행 출자) 사업에 7000억원, 통상대응 프로그램 지원(한국산업은행 출자) 사업에 6300억원이 배정됐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들 사업은 지난달 한미 정부 간 구체적인 합의 결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사업들 중에는 한미 정부 간 실무 협상을 통해 보다 구체화가 필요한 사업이 있다”며 “양국 기업 간 계약 및 MOU 체결 결과에 따라 정부 재정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관세협상에 대한 구두 합의 이후 대미 투자 관련 협정 체결 시점, 대미 투자 관련 내용 등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안이 편성됨에 따라 정책금융 패키지 3개 사업은 모두 지원대상이나 내용, 규모, 시기 등이 미정”이라며 “지난달 대미 투자 이행방안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1500억 달러의 조선업 협력에 보증이 포함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더불어 “현재 예산안은 이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합의 결과에 따라 내용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어 국회의 예산안 심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산업통상부는 무역보험기금 출연사업을 통한 기금 재원 확충 이후 구체적인 지원대상이나 지원내용, 지원시기 등 사업계획을 조속히 확정해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 비준동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국민의힘뿐 아니라 진보성향의 야당과 정의당,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은 ‘국회 비준’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또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 규모는 향후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관련 법령에 따라 통상조약 체결 절차 및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대한민국헌법 제60조제1항에 따르면 무역·투자 분야의 시장 개방, 재정 부담, 국민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국제조약에 대해 국회는 체결·비준 동의권을 가진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가 향후 정부 보조금이나 투자펀드 출연, 보증·보험 등으로 구체화 될 경우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한다는 측면에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산업통상부는 2025년 9월 3500억 달러의 금융 패키지 관련 세부내용에 대해 미국 측과 협의 중이며, 필요시 국회 동의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며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산업통상부가 관세 관련 대미 협의에 대한 ‘통상조약의 체결 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 적용 여부에 대해 법률 자문을 실시한 결과, ‘구체적 협상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법 적용 가능성 예단은 어려우나 선례 등 고려 시 통상조약법의 협상 전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던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한미 통상협상 등에 대한 국회 비준에 대해 다소 유보적이다. 앞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비준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으나 현재는 ‘합의 내용을 보자’는 쪽으로 선회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협상 결과를 봐야 비준 대상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날 박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국회 협력 필요한 사항이 (정부로부터) 요청이 돼야 어떤 방식으로 협력될 거냐를 결정하지 않겠나”라며 “현재 상태에서 비준이냐, 특별법이냐 등 방법을 토론하는 건 큰 의미는 없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은 야당 시절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 ‘국민동의 없는 합의’라며 ‘절차적 문제’를 들어 무효를 주장했다. 당시 남인순, 김종대, 이원욱 의원 등은 각각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위안부 협상 무효’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음으로써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못했고 공동의 합의문조차 없는 등 형식적으로도 부적절하다”며 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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