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 아직 자동화 단계…디지털에서 AI 금융으로”

2025-11-05 13:00:29 게재

백오피스 전산화 중심 머물러 … 여전히 사람 의사 결정 의존

AI, 단순 자동화 넘어 금융산업 판단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자본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고 있지만 국내 금융권은 여전히 백오피스 전산화 중심에 머물러 있어 글로벌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금융투자업계가 기존의 디지털 금융에서 AI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AI 금융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금융산업 판단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AI 시대, 자본시장의 진화와 도전 = 한국거래소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RX 컨퍼런스홀에서 학계, 법조계, 금융투자업계, 관계기관 등 전문가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5 건전증시포럼’을 개최했다.

이는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2005년부터 매년 자본시장 건전성 제고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제 발굴과 개선 방향 모색을 위해 개최하는 포럼이다. 최근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자본시장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논의하고, 우리 금융투자업계의 대응 전략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AI(인공지능) 시대, 우리 자본시장의 진화와 도전’을 주제로 발표와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김홍식 시장감시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최근 코스피 지수 최고치 경신 등 긍정적 시장 흐름 속에서도, 기술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래 자본시장으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AI가 우리 자본시장에 가져올 성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관리 방안도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민우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우리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립을 강조하면서, 정부는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설치·운영 등 신뢰받는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노력을 지속 중”이라며 “이번 포럼이 이를 위한 정책과제를 발굴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KRX) 시장감시위원회는 4일 오후3시 서울사옥 컨퍼런스홀에서 학계, 법조계, 금융투자업계, 관계기관 등 전문가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5 건전증시포럼’을 개최헸다. 주요 참석 인사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거래소 제공

◆“월스트리트는 이미 AI 금융 시대” = 이날 조성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는 ‘AI 기술이 자본시장에 가져올 변화’라는 주제 발표에서 기존 디지털 금융과 대비되는 AI 금융의 개념과 특징을 해외 금융투자업계의 주요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한국 금융은 아직 자동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디지털 금융은 단순히 거래를 전산화하고 채널을 온라인화한 수준이었다. 모바일·오픈뱅킹 등 디지털화로 편의성·접근성 혁신은 완성됐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사람의 의사 결정에 의존하며 지능화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AI 금융은 데이터에 기반한 자동화로 판단과 의사 결정 단계까지 진화한 것을 의미한다. 조 교수는 “AI는 투자 판단, 대출 심사, 리스크 관리 등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하게 될 것”이라며 “단순 자동화를 넘어 금융산업의 판단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미 월스트리트는 AI 금융 시대로 접어들었다. 골드만삭스는 ‘GS AI 플랫폼’을 통해 뉴스·리포트를 요약하고 투자 인사이트를 자동 생성해 애널리스트 생산성을 40% 향상시켰다. 모건스탠리는 오픈AI와 협업해 내부 전용 챗GPT 시스템을 구축했다. 블랙록도 리스크 분석 시스템 ‘알라딘(Aladdin)’에 AI를 적용해 분석 효율을 높였다.

조 교수는 “인구감소,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정체 시기 AI 금융이 생산성을 높이고 신뢰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한편, 고객별 리스크 대응을 할 수 있다”며 “AI 적응력이 미래 금융 생존의 조건이며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내 금융권은 AI 금융으로의 전환 필요성과 금융기관의 AI 적응력 제고를 위한 실행 전략을 세워야 한다. 조 교수는 “국내 금융기관은 AI 비전 및 조직 구축, 내부 데이터 품질 강화 및 보안 확보, AI 융합형 인재 양성 리터러시(활용 역량) 교육 등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 효율이 아닌 산업구조 혁신 필요” = 강형구 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또한 국내 금융권의 AI 도입은 주로 백오피스 자동화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자산 운용과 트레이딩에서 AI 기술의 영향과 리스크’라는 주제로 두 번 째 발표에 나선 강 교수는 AI 기술이 자산운용과 트레이딩 분야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주요 리스크를 분석하고, AI 기반 생태계 전환에 따른 자본시장 내 전략 변화와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및 제도적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지금 국내 금융권의 AI 도입은 주로 백오피스 자동화 중심에 머물러 있어 이대로 가면 오히려 ‘가짜 노동(fake labor)’만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복적인 보고서 작성, 내부 행정 효율화 같은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단순한 효율화가 아닌 산업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마이데이터 산업의 비효율성도 지적했다. 그는 “AI의 핵심은 데이터인데, 현재 국내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은 비용 부담으로 면허를 반납하는 상황”이라며 “엑셀 수준의 데이터 교환에 연 1300억원이 드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금융 G3를 목표로 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모든 영역을 다 하려 하기보다, 플랫폼·데이터·규제 혁신을 중심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AI는 금융의 생산성과 자산 구조를 동시에 혁신할 기술로 접근해야 한다”며 “AI 금융은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라, 자산 자체가 지능화되는 단계로의 진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AI 기술이 우리 자본시장에 가져올 변화와 이에 대한 관리·규제 방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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