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대법원 제동 걸리나

2025-11-06 13:00:02 게재

연방대법원 심리 시작 … 보수·진보 대법관 한목소리로 “대통령 권한 한계” 지적

5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앞에서 크리스 메이스 애리조나주 법무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메잇 장관 왼쪽에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오른쪽에는 댄 레이필드 오리건주 법무장관이 함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권한 관세’ 부과의 합헌성을 두고 5일(현지시간) 심리를 진행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보수 성향 대법관 다수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일괄 관세를 부과한 행위를 놓고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재판은 트럼프 행정부 2기 핵심 정책인 ‘보복관세’의 법적 정당성을 가를 중대 분수령으로, 판결 결과에 따라 수백억달러 규모의 환급과 무역협정 재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

보수 성향이지만 사안에 따라 중도적 입장을 취해온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행정부 측 변호인을 향해 “모든 나라가 국방과 산업기반을 위협한다고 본 것이냐”며 “스페인과 프랑스까지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라”고 따졌다. 같은 보수 진영의 닐 고서치 대법관도 “의회의 입법권이 행정부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일방향 권력 집중(one-way ratchet)’이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재집권 직후 중국·캐나다·멕시코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펜타닐 확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고, 4월에는 무역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100여 개 교역국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이번 재판을 “우리나라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표현하며 비상권한이 없으면 “미국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고 주장했다.

행정부를 대표한 존 사우어 미 법무부 법정변호국장은 “의회가 대통령에게 외환·무역 비상사태 대응을 위한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했다”고 항변하며 “관세는 세금이 아니라 외국 상거래 규제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보성향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관세가 세금이 아니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미국 시민이 부담하는 돈”이라고 반박했다.

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양측 모두를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지만, “과세는 헌법상 명백히 의회 권한”이라며 “대통령에게 외교권이 있다 하더라도 관세는 ‘대외적 세금’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이번 조치가 일정 부분 목적 달성에는 효과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는 와인 수입업체, 교육용 장난감 제조사 등 중소기업들이 주축이 된 12개 주와 수백 개 기업의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관세 부담으로 가격을 올리고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대통령이 임의로 전 세계 상품에 세율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법이 의도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부는 패소할 경우 기존 협상을 모두 되돌리고 수입업자들에게 수십억달러를 환급해야 하며, 이는 “대공황 수준의 경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다른 법률 조항, 특히 무역확장법 232조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다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 다수로 구성된 대법원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학자금 탕감 등 여러 정책을 무효화할 때 사용했던 ‘중대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이번에도 적용할지가 쟁점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처음으로 이 조항을 근거로 모든 국가, 모든 상품, 어떤 세율로든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중대한 권한 행사’에 해당한다”며 “그 근거가 부적절하다면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질문 원칙은 대법원이 행정부 권한을 제한할 때 자주 사용하는 사법심사 원칙으로, 경제나 사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major questions)에 대해서는, 의회의 명확한 위임 없이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핵심 취지다.

하급심에서는 이미 세 차례 트럼프 행정부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8월 연방순회항소법원은 7대4로 “IEEPA는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재판부는 “대통령이 보다 제한된 형태의 긴급관세를 부과할 여지는 남아 있다”고 여지를 뒀다.

이날 심리에는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미 무역대표 제이미슨 그리어가 방청석 맨 앞줄에서 지켜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참석을 검토하다가 “재판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취소했다.

대법원은 향후 몇 주 내에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외교 정책뿐 아니라 대통령 권한의 범위를 둘러싼 향후 헌정 질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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