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늘면 전기요금 오르나?…국가·지역마다 달라
미국, 풍력·태양광 비중 높은 22개 주 중 17개 주 전기요금 저렴
캘리포니아·하와이는 반대 … 화석연료 많지만 저렴한 지역 여럿
한국, 좁은 국토와 계통 한계로 ‘재생 확대 = 투자비 증가’ 구조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전기요금과의 상관관계도 뜨거운 이슈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생에너지가 확대된다고 꼭 전기요금이 인상되는 건 아니다. 다만 국가·지역마다 전력구조와 자연환경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주마다 전력구조·전기요금 천차만별 = 미국의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Politico)는 최근 보도에서 “미국 연방 및 주(State)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재생에너지(풍력·태양광) 발전비중이 전국 평균 이상인 주 중 다수의 전기요금이 전국 평균보다 낮다”고 보도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이어 “재생에너지 비중이 평균 이상인 22개 주 중 17개 주는 전기요금이 평균 이하였다”며 “여기에는 아이오와 오클라호마 텍사스와 같은 공화당 주가 13개나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51개 주(특별구인 워싱턴D.C. 포함)로 이루어져 있다.
폴리티코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자료를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2025년 6월말 기준 미국 전역의 풍력과 태양광 발전비중은 19%다. 평균 소매 전기요금은 kWh당 13.9센트로 나타났다.
미국은 같은 나라 안에서도 주마다 전력구조와 전기요금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아이오와(52%) 사우스다코타(50%) 캔자스(45%) 오클라호마(39%) 네브래스카(26%) 등 중부 평야지역은 풍력중심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평균이상이다.
서부해안의 캘리포니아(51%) 오리건(26%)이나 남부지역의 뉴멕시코(49%) 텍사스(33%)도 평균 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플로리다(10%) 버지니아(11%) 노스캐롤라이나(12%) 등은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다.
이 조사에서 관심을 끄는 점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높은 주들 가운데 오히려 전기요금이 싼 지역이 많다는 사실이다.
풍력·태양광 비중이 50% 이상인 아이오와의 요금은 11.1센트, 사우스다코타는 11.7센트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한 아이오와 뉴멕시코 캔자스 오클라호마 네브래스카 등 풍력·태양광 발전비중이 평균 이상인 지역의 전기요금도 9~12센트 수준으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
미국 아이오와와 캔자스는 바람이 강하고 평지가 넓어 풍력발전 단가가 낮으며, 현지에서 발전한 전기를 인근 주로 공급할 수 있는 광범위한 송전망을 갖추고 있다. 이런 구조는 연료비 변동이 큰 천연가스나 석탄보다 안정적이다.
◆전기요금, 발전원보다 인프라·시장구조·자연환경 등이 좌우 = 반면 하와이(재생에너지 비중 34%)와 매사추세츠(21%)는 전기요금이 각각 35.1센트, 25.1센트로 전국 평균의 두 배를 넘거나 버금간다. 캘리포니아 메인 버몬트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지만 전기요금은 평균 이상이다.
이는 전기요금의 문제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섬 지역 또는 노후 송전망 등 지역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플로리다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등도 전기요금이 11~13센트 수준으로 저렴하다.
이처럼 전기요금은 단순히 발전원 구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해당지역의 자원 여건, 송전 인프라, 전력시장 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자원 보유 여건과 송배전 인프라 비용, 시장구조와 규제환경, 기후와 수요패턴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실례로 발전소와 소비지의 거리가 멀수록 송전비용이 증가한다. 미국의 경우 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의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낮지만 대도시로의 장거리 송전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주는 전력시장을 자유화해 요금경쟁이 치열하지만, 어떤 주는 공공에서 요금을 통제하는 경우가 있어 대비된다.
폭염이나 한파 등 극단적 기상 조건은 냉·난방 수요를 급등시켜 요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 송전망·백업설비 부담이 요금 상승요인으로 작용 = 이와 관련,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진다”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획일적으로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아 대규모 풍력단지를 조성하기 어렵다. 태양광 역시 국토 이용 한계와 일조량 편차 때문에 발전량이 지역별로 불균등하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신재생설비가 집중된 전남·제주 등 남부지역은 송전용량이 포화 상태다. 반면 수도권은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전력생산이 미미해 전력수급 불균형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려면 송전선로 증설, 변전소 신설,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등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간헐적인 태양광·풍력 발전을 보완하기 위한 가스발전·배터리 백업시스템 운영비도 요금에 반영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30%를 넘으면 전력계통 안정화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며, 이는 소비자 요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국 단일요금제를 채택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커질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 설비가격은 떨어졌지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경직성을 보완하기 위한 백업설비 구축·운용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만 해도 RE100(재생에너지 100%)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거래계약(PPA) 가격이 kWh당 170원 정도였는데 최근 210원 정도로 더 높아졌다”며 “이러한 사실은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 달성이 만만치 않은 과제임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그리드 패리티는 재생에너지의 생산비용이 기존 전력망에서 전력을 구매하는 가격과 같아지는 시점을 뜻한다.
따라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되 신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로 인한 에너지전환은 비용이 수반되며 그 비용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함을 잘 알려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