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한미관세합의 비준동의대상 아냐”…‘말 바꾸기’ 논란

2025-11-06 13:00:27 게재

국민의힘·진보정당·시민단체·국회 싱크탱크 “비준동의 필요”

김민석 총리·조현 장관도 국회에서 “국회 동의 받을 것” 발언

민주당, ‘박근혜정부 위안부 합의’에 ‘국회 동의 없어 무효’ 주장

영향 평가·국내산업 보완대책 등 제출 의무 없는 ‘속도전’ 주력

한미관세협상 합의 내용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지 않겠다고 결정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회 비준동의 거부’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이나 정부의 ‘비준동의를 밟겠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한 것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과거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절차적 결함을 지적하며 무효를 주장했던 것과도 배치된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진보정당, 진보진영 시민단체, 국회 싱크탱크인 국회예산정책처도 ‘비준동의’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한미 관세 협정이 낳는 영향 평가나 국내산업 보완대책 없이 ‘속도전’에 나서고 있어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발언하는 김병기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정애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6일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김민석 총리 등이 한미협상 결과에 대해 비준동의를 밟겠다고 국회에서 발언하기도 했지만 엄밀히 따져본 결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으로 대통령실이 판단했다면 여당으로서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 의장도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함미 관세 협상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양해 각서로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전날 대통령실은 “관세합의 MOU(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은 아닌 것으로 실무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다만, 국회 비준 동의 대상 여부와 관계없이 관세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국회에 충분한 보고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이 곧바로 논평을 통해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한미 관세 협상 MOU는 애초에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비준(동의)’만 외치는 건, 정쟁으로 몰고 가 ‘국익 발목 잡기’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비준동의 요구’를 ‘국익 발목잡기’ ‘정쟁’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지난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대미투자와 관련해 ‘헌법상 재정부담 입법은 국회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야당의 지적에 김민석 국무총리는 “최종 관세협상 결론이 나는 시점에 재정 부담을 지울 수 있는 부분은 국회의 동의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조 현 외교부 장관도 “국민 부담을 지우는 내용은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고, 이를 미국에도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합의 직후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기자들과 만나 “비준 절차 등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진보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국회 싱크탱크인 국회 예산정책처도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 규모는 향후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관련 법령에 따라 통상조약 체결 절차 및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의 관세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가 향후 정부 보조금이나 투자펀드 출연, 보증·보험 등으로 구체화 될 경우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한다는 측면에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산업통상부는 2025년 9월 3500억 달러의 금융 패키지 관련 세부내용에 대해 미국 측과 협의 중이며, 필요시 국회 동의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며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산업통상부가 관세 관련 대미 협의에 대한 ‘통상조약의 체결 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 적용 여부에 대해 법률 자문을 실시한 결과, ‘구체적 협상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법 적용 가능성 예단은 어려우나 선례 등 고려 시 통상조약법의 협상 전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던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비준동의 불필요’ 입장을 내놓는 데는 ‘속도’가 검토된 것으로 보인다. 대미투자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한 직후부터 관세인하 효과가 발효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미 양국은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점으로 자동차 등의 상호관세율을 당초 25%에서 15%로 인하키로 합의했다”며 “11월 중에 국회에 특별법이 제출되면 우리 정부는 이를 미국 정부에 알리고, 미국 정부는 제출한 달의 첫날, 즉 11월 1일을 기점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행정명령을 하게 된다”고 했다.

막대한 재정부담 뿐만 아니라 국내 지역 경제, 서민 고용 등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정부와 여당의 ‘속도전’을 놓고 논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는 국회 비준동의를 요청할 때는 정부가 ‘영향 평가 결과’ ‘비용 추계서와 재원조달 방안’ ‘국내산업 보완대책’ 등을 같이 제출해야 한다. 진보당은 ‘특위’를 구성하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한편 민주당은 야당 시절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 ‘국민동의 없는 합의’라며 ‘절차적 문제’를 들어 무효를 주장했다. 당시 남인순, 김종대, 이원욱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결의안에는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음으로써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못했다”며 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결의안에는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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