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도시를 바꾼 시장, 혁신을 선택한 시민
도시를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올바른 비전과 열정을 지닌 단체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런 단체장을 뽑고 제대로 일하도록 감시하고 응원하는 시민의 몫이 더 크다. 40여 년간 도시를 연구하며 세계 곳곳에서 도시를 혁신한 존경스러운 단체장들을 보아왔다. 그런 리더를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세번씩 시장을 역임하면서 브라질 꾸리찌바를 세계 최고의 생태도시로 만든 자이메 레르네르는 건축가 출신이었다. 그는 돈보다 창의력으로 도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었고, 해결의 열쇠로 ‘공동책임의 방정식’을 제시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가정에서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가져오면 무게를 달아 과일로 바꿔주는 ‘녹색거래’는 시민 참여를 이끌어낸 상징적 사례였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지하철 대신 꾸리찌바는 1974년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린 간선급행버스(BRT)를 세계 최초로 운행했다. 전용차로 위를 막힘없이 달리는 굴절버스와 사전에 요금을 결제하고 대기하는 튜브형 정류장은 지하철에 버금가는 가성비 좋은 대중교통을 구현했다. 지하철 대비 1/30 건설비용으로 효율을 높인 BRT는 지금 전세계 190여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도시를 바꾸는 힘 시민의 역할 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시장을 두번 역임한 엔리케 페날로사는 꾸리찌바의 BRT에서 영감을 받아 ‘트랜스밀레니오(BRT)’를 도입해 대중교통의 속도와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보고타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된 ‘시클로비아’ 또한 도시혁신의 아이콘이다.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마다 시내 주요도로 120km 구간의 차량통행을 막고 시민에게 내어준다. 차없는 거리 시클로비아에서 시민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사람이 도시의 주인임을 거듭 확인한다.
안 이달고는 2014년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으로 당선되어 첫 임기 6년 동안 사회주택 확대와 보행·자전거 중심 교통체계 개편을 힘 있게 추진했다.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건강·생태·연대’를 내세우며 ‘15분 도시’ 구상을 본격화했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고, 도심부 대부분 지역의 주행속도를 시속 30km로 낮추었다.
스페인 폰테베드라 시의 미구엘 로레스 시장은 1999년에 처음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도심부 30㎢를 차 없는 구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선된 뒤 도심 주차장을 외곽으로 옮기고 차량 진입을 차단하자 거리는 조용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몇년 뒤 교통사고 사망자는 제로가 되었고, 대기오염 감소와 전입 인구 증가 덕분인지 그는 지금도 7선 시장으로 재임 중이다.
모리 마사시 일본 도야마 시장은 공짜와 할인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 ‘프리미엄 도시(Freemium City)’를 지향한다. 고령자에게 무료 교통패스를 제공해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고, 외곽에서 도심에 도착할 때 대중교통 요금을 100엔으로 낮추어 도심부 방문을 유도했다. 손자와 함께 외출하는 노인에게 공공시설 입장료를 면제해주고 특정한 날에 꽃을 들고 오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는 흥미로운 캠페인을 벌인다. 도야마의 공짜 정책은 시혜가 아니라 투자였다. 외출과 도심부 방문이 늘어남에 따라 상권이 살아나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오르면서 도시도 시민도 건강해졌다.
맘다니의 당선, 도시정책 패러다임 바꾸나
그리고 4일(현지시간), 정치 경력 4년 차인 조란 맘다니가 뉴욕시장에 당선되었다. 34세의 젊은 이민자 출신인 그는 “뉴욕은 일하는 시민의 도시여야 한다”를 외치며 임대료 동결, 공공임대주택 확대, 빠른 무료버스 운행 등 혁신 공약을 내걸고 시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의 당선은 도시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불리는 도시 뉴욕에서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칭하는 청년 시장이 펼칠 도시혁신 실험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도시를 바꾸는 힘은 시민에게서 온다. 도시를 바꿀 의지와 열정을 지닌 용기 있는 단체장을 알아보고,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혁신을 선택한 시민이 있을 때 도시는 다시 힘차게 살아난다.
정 석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