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4 한국의 우유니 소금사막, 볼음도 갯벌
북방한계선 갯벌에서 백합잡고 사진찍고
천년의 이별을 견디고 사는 나무.
강화 볼음도 내촌마을 아름드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4호)에는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이 나무는 원래 북녘 땅에 살았다. 900여년 전 고려시대, 지금의 북한 연안군 호남리에 부부 은행나무가 살았는데 어느 여름 홍수에 남편 나무가 뿌리 뽑혀 볼음도 바다로 떠내려온 것을 주민들이 건져내 다시 심었다고 전해진다.
볼음도에서 연안까지는 불과 8㎞. 볼음도 주민들은 수소문해 그 나무가 호남리에서 떠내려 온 것을 확인했다. 매년 정월 초 풍어제를 지낼 때면 볼음도와 호남리 어부들은 서로 연락한 뒤 같은 날짜를 맞추어 생일상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헤어진 두 은행나무 부부의 슬픔을 달래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은행나무 생일상 행사는 한국전쟁 이후 두 지역이 남북으로 갈리면서 중단됐다. 그 후 볼음도의 남편 나무는 시름시름 앓더니 점차 말라가기 시작했다. 섬 주민들은 연안에 사는 아내 나무의 안부를 알 길이 없어지자 죽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은행나무 근처에 저수지가 만들어진 뒤 남편 나무는 다시 살아나 푸르름을 되찾았다. 들리는 풍문에는 북한의 아내 나무도 휴전선이 그어진후 시름시름 앓았는데 근래 호남 중학교 교직원들의 보살핌을 받아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옛날 여름이면 내촌 마을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은행나무 아래서 잠을 잤는데 선풍기를 튼 것보다 시원했다고 한다. 호남리 은행나무도 북한의 천연기념물 165호로 보호받고 있다. 천년의 이별을 견디면서도 서로 살아남은 나무들. 어찌 이별이 슬프다고만 하겠는가?
볼음도는 바다의 국경 섬이다. 철책선은 없지만 NLL(북방한계선) 인근에 있는 섬이라 여전히 군사적 긴장이 흐른다.
과거에는 주민 외에는 섬에 친인척이 있거나 공무상의 이유가 아니면 출입이 금지됐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섬의 자연환경이 난개발로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특히 볼음도 갯벌은 드넓고 보전 상태가 좋기로 유명하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의 길이는 무려 8㎞나 된다. 모래가 섞인 혼합 갯벌이라 트렉터나 경운기가 들어갈 수 있다. 이 갯벌에서는 관광객들이 끄레라는 전통 도구를 이용해 백합잡이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이 광활한 갯벌은 백합보다 더 특별한 선물을 안겨준다. 갯벌 바닥의 반영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면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의 반영 사진 못지않다. 한국의 우유니 사막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우유니 사막에는 소금밖에 없지만 볼음도 갯벌에는 백합과 모시조개와 밴뎅이, 숭어 같은 해산물도 풍성하다.
볼리비아가 멀다면 한국의 우유니 사막, 볼음도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볼음도에서는 전 세계에 5000여마리 밖에 없는 멸종 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봄이면 논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저어새를 아주 가까이서 물오리만큼이나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볼음도에는 백섬백길 97코스 ‘볼음도 강화나들길’이 있다. 9.4㎞의 볼음도 나들길은 섬 해안 둘레를 따라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최고의 트레일이다. 볼음도항을 출발해 조개골해변 영뜰해변 죽바위 은행나무 봉화산 당아래 마을을 거쳐 다시 볼음도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일부 산길이 있지만 최고 높이가 100m가 되지 않아 힘들지 않고 산책길처럼 편안히 걸을 수 있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