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상암월드컵경기장까지 덮쳤다

2025-11-07 13:00:02 게재

‘폭염·혹한’에 잦은 경기 일정 … 잔디 몸살

서울시, 예산 3배↑장비확충 ‘악전고투’

지구온난화와 이로부터 비롯된 기후위기가 축구장까지 덮쳤다.

7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한국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잔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상암구장 잔디는 기후의 급변에 직격탄을 맞았다. 여름철 폭염과 집중호우로 잔디가 썩고 겨울철 혹한에는 뿌리가 얼어붙는다. 흔히 양잔디로 불리는 한지형잔디는 미관에는 유리하지만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여름철에는 생육이 급격히 저하된다. 실제로 지난해 혹서기에는 38일간 폭염(33℃ 이상)과 46일의 강우가 이어졌고 올해초에는 3월까지 한파가 지속돼 전국 주요 경기장의 잔디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서울의 7~8월 평균기온(약 29도)은 런던(23도) 뮌헨(23도)보다 6도가 높고 강수량은 5~7배에 달한다. 겨울 또한 평균최저기온이 영하 5도로 유럽 주요 도시보다 8~10도가 낮다.

그렇다고 잔디 종류를 바꾸기도 어렵다. 축구 전문가들은 “축구 선진국이자 세계 4대 빅리그가 모두 모여 있는 유럽 국가들은 모두 이 잔디를 쓴다”며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한지형 잔디 적응은 필수”라고 말한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까지 = 서울시는 잔디 관리 강화를 위해 올해 예산을 전년(11억원)보다 3배 이상(40억원) 늘렸다. 예비잔디 확보 면적은 4200㎡에서 1만6000㎡로 확대했고 일반 잔디 보다 3배 이상 비싼 하이브리드 잔디도 1만1000㎡를 새로 구입했다. LED 인공채광기, 쿨링포그팬 등 선진 장비를 도입해 일조량 부족과 통풍 문제를 개선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문제와 더불어 빡빡한 경기 일정은 잔디 관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K-리그와 FA컵,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각종 이벤트 매치까지 국내에서 치러지는 주요 경기 대부분이 상암에서 치러진다. 올해에만 축구경기 19건, 각종 문화·이벤트 행사 13건 등 총 32건이 진행됐다.

국내 대표 축구 경기장인 상암월드컵구장이 기후변화와 무리한 경기 일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날 경기를 마친 경기장 곳곳 잔디가 깊게 파여 있다. 사진 이제형 기자

이에 더해 올해는 11월 국가대표 평가전, 12월 초 ACL 일정까지 예고돼 있다. 겨울에도 잔디가 쉬지 못할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시의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성호 서울시의회 의원은 강한 직사광선을 차단하기 위해 ‘공중 직사광 가림막’을 띄우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른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다.

◆잔디 관리로 상도 받았지만 =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서울시는 올해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린스타디움상’과 대한축구협회의 ‘잔디관리 공로패’를 받았다. 하지만 현장에선 “잔디는 하루 이틀 관리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기후가 바뀌고 경기 일정을 조정하지 않으면 근본 해결은 어렵다”고 여전히 어려움을 토로한다.

기후위기 속 잔디 관리 대안을 두고 축구계 안팎에선 ‘추춘제’ 도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J리그는 2026~2027 시즌부터 ‘가을 개막·봄 종료’ 방식으로 전환한다. 여름 혹서기(7~8월)를 피하고 겨울엔 2개월 가량 휴식기를 둔다. 잔디 생육 환경을 개선하고 선수 부상 위험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추춘제는 한국 축구 수준 향상에 보탬이 된다. K리그도 유럽과 시즌이 맞물려 이적시장 운영이 쉬워지고 국가대표 A매치 일정 조정도 유리해진다. 혹한권역(강원 춘천 등)의 경기 운영, 팬 관람 환경, 제설·난방 비용 등 현실적 제약은 과제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후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구장 운영을 하려면 제도 전환뿐 아니라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축구계 관계자는 “겨울에도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남부권 구장을 새로 짓거나 상암을 대체할 국가대표급 경기장을 중부권인 충청 또는 경기권에 추가로 건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축구계는 2002년 월드컵 이후 국제경기를 위한 신규 경기장을 단 한곳도 건립하지 않았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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