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기후금융으로는 21세기 재난 막을 수 없다

2025-11-10 13:00:00 게재

COP30, 10일부터 브라질에서 열려 … 대한민국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관련 예산 부처 간 입장 차 조율 시급

10일부터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기후변화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금융체제와 거시경제를 위협하는 현실적 위험으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번 COP30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기후 재원 논의뿐 아니라 기후변화가 금융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국제 협력 체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6일 세계적인 기후경제학자인 제임스 스톡 하버드대 기후·지속가능성 담당 부총장과 윌리엄 파이저 미국 싱크탱크 RFF 총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공동 기고문을 싣고 “기후변화는 먼 미래 환경 이슈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금융·거시경제적 문제”라며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든 말든 그 영향은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7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정상회의 ‘파리협정 10주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재정’에서 “당사국별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기후 재원이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한 국제 협력의 핵심 가속화 요인”이라며 “역사는 우리가 무엇을 의도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달성했는지를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정상회의에 참석한 국가 정상, 정부 수반 및 기타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 촬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관문인 벨렝에서 10일부터 열리는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본회의에 앞서 열렸다. EPA=연합뉴스

◆기후재원 둘러싼 당사국 간 이견 여전 = 10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COP30이 10~21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번 총회에는 협약당사국 정부대표단을 포함해 약 5만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하여 관계부처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정부대표단이 참석한다. 올해는 파리협정 채택 10주년으로 의장국인 브라질은 COP30 3대 우선순위로 △다자주의 강화 △국제 기후 논의와 국민의 실생활 연결 △행동 촉진 및 구조 변화를 통한 파리협정 이행 가속화를 제시한 바 있다.

최근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이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종합보고서’는 각국이 제출한 감축목표를 이행하더라도 파리협정 온도 목표 달성에는 현저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을 가속화하기 위한 기후재원 논의가 이번 COP30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지난해와 올해 당사국총회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과 브라질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및 기술적 검토를 통해 공공·민간 부문의 모든 행위자가 2035년까지 개도국을 대상으로 연간 1조3000억달러를 동원할 수 있는 경로를 모색해 왔다.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해서는 전지구적 적응목표의 이행 현황을 점검할 지표체계 마련 논의가 진행된다. 2023년 COP28에서 정책주기별·부문별 중점과제로 구체화한 적응목표의 진전을 측정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2년간 개발한 100개 지표 후보를 기반으로 ‘UAE-벨렝’ 지표 작업 프로그램의 최종 결과물이 합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지표체계 구조나 재원 등 이행수단 내용을 두고 당사국들 간 이견이 여전한 상황이다.

◆미국 청정기술 투자, 정책지원 상실로 어려움 =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는 산불이나 홍수 같은 ‘물리적 리스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탄소 경제로의 불안정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리스크’ 역시 거시경제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허가 절차 개선과 연방 보조금에 의존했던 청정 기술 투자들이 정책 지원 상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53~61%로 사실상 결정됐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및 국무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후 COP30에서 해당 내용을 국제사회에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둘러싼 논쟁은 예산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기획재정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각각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재원을 추산했다.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더라도 필요 예산 추정치가 큰 폭으로 차이가 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산업계와 시민사회 간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후정책 신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6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각 부처별로 필요한 예산을 받았는데 기후대응의 의미를 폭넓게 받아들인 곳도 있었다”며 “조만간 통일된 필요 예산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예측 가능한 전환 경로 제시 중요 = 6일 윌리엄 파이저 부총장과 제임스 스톡 총재는 사이언스의 기고문을 통해 “기후 재난이 급증하는 동안 금융 리스크 관리 기반 시설은 여전히 20세기 기후와 화석연료 중심 경제를 전제로 설계된 분석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며 “△투자자 △규제 당국 △중앙은행 △정부가 사용하는 리스크 평가 모델은 더 이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팰리세이즈 산불은 약 1000억달러의 재산 및 자본 손실을 초래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를 강타한 허리케인 헬린은 780억달러의 피해를 냈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산 가치를 잠식하고 보험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가계 재정을 압박하는 금융 사건이다.

이러한 기후재난의 금융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2020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미국 금융 시스템과 경제의 안정성에 주요 리스크를 제기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재무부는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 위원회와 외부 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 위원회들은 지난 9월 10일 모두 해체됐다.

이에 대응해 민간 싱크탱크 RFF와 하버드대 살라타 기후지속가능성연구소는 최근 ‘기후 관련 금융·거시경제 리스크 이니셔티브(CFMRI)’를 발족했다. △과학자 △경제학자 △금융 학자 △민간 부문 이해관계자 △정책 입안자들의 네트워크인 CFMRI는 기후 관련 금융·경제 리스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정책 대응을 촉진하며 연구 커뮤니티를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CFMRI는 금융 시스템 녹색화 네트워크(NGFS)나 금융안정위원회(FSB) 같은 국제기구들의 작업을 보완할 예정이다.

파리협정 채택 10주년을 맞는 이번 COP30에서 브라질이 제시한 ‘행동 촉진 및 구조 변화를 통한 파리협정 이행 가속화’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기후변화를 환경 문제가 아닌 금융·거시경제 리스크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분석 도구와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기후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전환 경로를 제시하는 일 역시 이번 총회의 중요한 과제다.

대한민국은 이번 COP30에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에 공식 발표한다. 하지만 부처 간 예산 조율이 신속히 마무리되지 않으면 산업계와 시민사회 모두의 신뢰를 잃고, 더 나아가 국제 투자자들에게도 불확실성 신호를 보내는 셈이 된다. 20세기 도구로 21세기 기후 재난을 막을 수 없다는 경고는 대한민국 정부 내부의 정책 일관성 확보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파리협정 =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5개국이 채택한 기후변화협약이다. 2020년 만료된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신기후체제다. 전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