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정부 정책으로 전기자동차 보급 부진”

2025-11-10 13:00:00 게재

그린피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등 분석 결과

화석연료 보조금 중단만으로 전기차 30% 증가

정부의 엇박자 정책으로 수송 부문 탄소중립 달성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내연기관차에 연간 예산 7조~8조원을 쏟아부어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린피스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10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기차 전환, 역행하는 정부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주요 골자는 △유류세 한시적 인하 △유가보조금 △하이브리드차 세제 감면 등 내연기관차 지원 정책이 전기차의 경제적 매력을 떨어뜨려 무공해차 전환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8월 24일 경기도 평택항에 세워진 수출용 차량들. 평택=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유류세 깎으며 전기차 확대? = 이 보고서에서는 내연기관차 지원 정책 폐지의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내연기관차 지원 정책 폐지(2025년 단기 시나리오 1) △탄소중립 목표 기반 유류세 점진적 인상(2026~2035년 장기 시나리오 2-1) △확보된 재정을 활용한 전기차 지원 확대(장기 시나리오 2-2) △모두 결합한 포괄적 정책 지원(장기 시나리오 2-3) 등이다.

또한 소비자 선택확률 모델을 적용해 전기차 보급과 2025년 대비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정량 분석했다. 소비자 선택확률 모델은 개인의 자동차 구매 고려 요소(△구매가격 △연료비 세금 유지비 등을 합한 총소유비용(TCO) △브랜드 선호도 △충전 편의성 △환경의식 등)를 수치화해 전기차를 선택할 확률을 계산하는 수학적 모델이다.

2025년 단기 시나리오 1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행 내연기관차 지원 정책을 즉시 폐지할 경우 전기 승용차 보급대수가 약 30.2% 증가(약 4만6000대)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3.6% 감소(207만톤) 했다. 이는 전기차 보급을 위한 추가 예산 투입 없이 제도 개선만으로도 이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장기 시나리오에서는 이 효과가 더 극대화했다. 내연기관차 지원을 전면 폐지하고 유류세를 정상화하는 동시에, 확보된 재정을 전기차 보급에 재투자하는 ‘포괄적 정책 지원 시나리오(시나리오 2-3)’의 경우 2035년 신규 승용차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5년 대비 27.9% 감축하고 전기차 신규 판매 비중을 54.8%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30년까지 한국이 목표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송 부문 감축량의 약 25%를 달성할 수 있는 규모다.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도 2030년 약 368만대, 2035년 약 712만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문효동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추가 재정 투입 없이 단순히 내연기관차 지원을 폐지해 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내연기관차 퇴출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정책 신호와 전기차 보급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휘발유값이 전기요금보다 4~6배 중요 = 대한민국 정부는 최근 국제유가 급등과 물가 안정을 이유로 휘발유·경유 등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해 왔다. 2021년 11월부터 시작된 유류세 인하 조치는 처음에는 6개월 한시 조치로 도입됐지만 18차례나 일몰이 연장돼 2025년 11월에도 유지 중이다.

또한 유류세 인하율은 초기 20%로 시작되었으나,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을 통해 감면 조정 한도를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하면서 2022년 7월부터 휘발유·경유 유류세를 역대 최대폭인 37%까지 인하했다. 이후 물가 추이에 따라 인하폭을 단계적으로 조정하여 2024년 6월까지 △휘발유 25% △경유 37% 수준으로 감면을 지속하다가 2025년 11월 기준 △휘발유 7% △경유 10%의 인하율이 적용 중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로 인해 2023년 한 해에만 약 7조8000억원에 달하는 세수 감소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유류세 인하로 내연기관차 운행 비용이 인위적으로 낮아지면 총소유비용 측면에서 전기차와의 격차가 줄어들어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내연기관차의 연료비 부담을 줄여 전기차의 주요 장점인 연료비 절감 매력을 감소시키는 등 결국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기차 판매는 전기요금 변화보다 휘발유 가격 변화에 4~6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2014~2017년 캘리포니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이 연구 결과는 워킹페이퍼 형태로 발표됐다.

보고서에서는 “내연기관차 지원 정책 다수가 보편 지원 또는 일률 지원 형태로 이루어지다 보니, 정작 실질적 지원이 시급한 계층에게 충분한 혜택이 가지 않는 반면 불필요한 대상에게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며 “유류세 인하 혜택은 차량 운행량이 많은 고소득층에 집중됐고 화물차 유가보조금 역시 영세 자영 운송업자보다는 법인 물류회사나 대형 차량 보유자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한정된 재원이 정책 목표 대비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으며, 같은 예산으로도 탄소감축이나 서민 지원에 더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화물차 유가보조금의 경우 유류세 인하와 맞물려 유가 변동에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영세 화물 운송업계의 경영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신호만 퇴색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만큼 비효율적인 정책은 재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명확한 정책 신호 필요” 목소리 커져 = 중국은 2023년 전기차 신규 판매 비중이 30%에 육박하며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했다. 반면 한국의 2024년 신차 기준 무공해차 보급률은 9.1%로 전세계 평균 13.7%에도 미치지 못한다. 보고서는 “정부가 내연기관차 퇴출 시한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산업계도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유류세 한시 인하 즉각 폐지 및 탄소감축 목적 유류세율 인상 △유가보조금 단계적 폐지 및 소득보전 대체 지원 강화 △하이브리드차 개별소비세 감면 즉각 종료 △노후차 폐차 후 전기차 구매 시 추가 보조금 지원 등의 단계적 정책 폐지 로드맵을 제시했다. 또한 확보된 재원을 △전기차 구매보조금 증액 △충전 기반시설 확충 △저리융자 지원 등에 재투자할 것을 제안했다.

홍혜란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내연기관차 지원 정책 폐지는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니라 시장 신호를 바로잡아 사회 전반의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하는 강력한 정책 수단”이라며 “정부는 모순된 정책을 즉각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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