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회의에서 다른 목소리 내기 시작한 이찬진 금감원장

2025-11-10 13:00:00 게재

‘안건 소위’ 결정 그대로 의결하는 현 운영방식에 문제 의식

‘발행어음 인가’ 심사중단 의견도 제시, 소위 결론에 이견

‘밀실 행정’ 비판 받아온 ‘안건 소위’ 중심 의결 관행 바꾸나

금융위원회 회의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정례회의와 임시회의를 통해 금융정책과 제도, 감독·검사·제재, 금융기관 관련 인허가 등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에 대한 주요 결정을 내린다. 다만 금융위 회의에 앞서 ‘안건 검토 소위원회’가 먼저 사안을 논의해 결론을 내리면, 관행적으로 금융위 위원들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해 금감원장, 기획재정부 차관, 예금보험공사 사장, 한국은행 부총재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오른쪽),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의날 기념식에 참석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8월 16일 취임 이후 처음 참석한 9월 3일 제15차 금융위 회의에서 ‘금융투자업 인가 심사중단안 보고’ 안건에 대해 심사중단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안건은 5개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금융당국에 신청했지만 금감원이 4곳에 대한 심사중단을 요청한 사안이다.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에 대해 금융당국의 제재와 수사·재판 등 사법리스크로 인한 심사 중단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안건 소위에서는 2차례 논의 끝에 중단 없이 심사를 지속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날 금융위에 안건으로 올라온 것이다.

공개된 금융위 의사록(발언자의 실명은 나오지 않음)에 따르면 이 원장으로 추정되는 금융위 위원은 “안건 및 추가 논의과정에서 고려된 부분을 감안할 때, 문제가 있는 2개 회사들은 심사중단 사유가 인정되므로 현 시점에서 심사를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문제가 있음에도 현 시점에서 심사를 중단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심사중단을 하게 되면, 주식시장에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며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위원은 “안건 소위에서 심사중단을 보류하는 것은 대상이 되는 회사들이 일단은 제재수준이 아직까지 불명확해서 그러한 제재수준이 인허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정도에 그친다고 판단이 돼서 중대성과 명백성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발행어음 인가라는 것은 사실 증권사의 생산적 금융 공급을 촉진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 신청하는 증권사의 대부분을 심사중단해서 발행어음 인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관련해서 부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일단 심사는 계속하되 추후에 조금 더 구체적인 사유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다시 중단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안건 소위 위원님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안건 소위는 금융위 상임위원 2명, 비상임위원 1명,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등 4명으로 구성되며, 해당 발언은 안건 소위 논의에 참여했던 위원이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장은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심사중단 사유에 해당되므로 심사를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오늘 위원들 간 공통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면, 일단 보류하고 다음 회차에 다시 논의하는 방법도 있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 위원들은 심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냈고 결국 안건 소위에서 결론을 낸 것과 같이 ‘심사중단 사유가 중대성, 명백성 측면에서 보다 명확해지기 전까지 계속 심사를 하는 것’으로 안건을 수정 접수했다.

15차 금융위 회의 이후 진행된 회의 의사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원장은 이후 회의에서도 본인의 의견을 다수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안건을 사전 보고 받을 때에도 “이 건은 회의에서 얘기를 하겠다”며 별도 메모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회의에 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 원장이 일부 금융위 위원들로 구성된 ‘안건 소위’에서 결정된 사안을 금융위 전체 회의에서 그대로 결정하는 회의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 원장이 안건에 대한 위원회의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해 금융위 위원들이 표결까지 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회의에서 표대결을 한 사례는 그동안 없었다. 제재 안건과 관련해 이 원장은 ‘과실’로 볼 수 없고 ‘고의’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장이 현재 ‘안건 소위’ 운영 구조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안건 소위 운영과 관련해서는 ‘밀실 행정’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단 4명이서 밀실 행정으로 전체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 등을 사전 검토해 처리 방향을 결정하니 과다하고 비상식적 심사기간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안건 처리가 지연될수록 제재 대상 금융회사의 로비 개연성은 높아지는데, 실제 금융사 법률대리인인 로펌에는 금융위 출신 전관들도 다수 재직하고 있어 솜방망이 처벌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찬진 금감원장 보다 한달 늦은 9월 15일 취임했고 취임 직후부터 금감원과 원팀·원보이스를 강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조직 내부의 대립각은 더 커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