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완성차업체 관세 타격 현실화…5년 만에 실적 악화
상반기 14조원, 연간 24조원 손실…도요타 빼고 판매 부진
닛산, 본사 건물 매각 등 재건 몸부림에도 향후 전망 불투명
일본 자동차 업체의 미국발 관세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를 뺀 대부분 완성차 업체가 판매 부진에 빠진 가운데 향후 전망도 부정적이다. 닛산자동차는 본사 건물까지 매각하면서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경영개선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엔화 약세 따른 실적 개선 여지도=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완성차 업체는 지난주 일제히 올해 상반기(4~9월기) 실적을 발표했다. 도요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매출이 감소한 가운데 순이익은 모두 줄었다. 도요타는 이 기간 매출이 24조6307억엔(약 232조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순이익은 1조7734억엔(약 16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감소했다.
혼다는 매출(10조6326억엔)과 순이익(3118억엔) 모두 전년도 상반기 실적에 비해 각각 1.5%, 37.0% 줄었다. 닛산은 더 심각하다. 같은 기간 매출(5조5786억엔)은 전년 동기 대비 6.8% 줄었고, 2219억엔(약 2조100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처럼 일본 완성차업체 7개사가 동시에 전년 동기에 비해 실적이 악화한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이후 5년 만이다. 가이하라 노리야 혼다자동차 부사장은 결산 기자회견에서 “관세영향은 이제 뉴노멀이 됐다”면서 “앞으로도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자동차 업체가 미국발 관세조치에 따른 영업이익 손실은 상반기에만 1조4932억엔(약 14조4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도요타(-9000억엔)와 혼다(-1643억엔) 등 모든 업체가 관세 충격을 비켜가지 못했다. 이들 업체는 연말 결산기(2025년3월~2026년3월) 실적에서도 관세로 인해 연간 약 2조5175억엔(약 23조7000억원)의 부정적 영향을 전망했다.
미국은 일본 자동차 수입에 대해 9월16일부터 관세를 27.5%에서 15%로 인하했지만 이미 4월부터 시행한 높은 관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도 15% 관세는 계속 유지돼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환율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150엔대를 크게 웃돌았던 것에서 올해는 140엔대 중반까지 떨어지면서 약 7000억엔(약 6조6000억원) 가량의 환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최근 엔화가치가 다시 하락하면서 수출 자동차업체 실적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동차 각사는 연간 환율을 달러당 140~147엔 수준으로 상정하고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며 “최근 154엔대까지 상승한 엔달러 환율로 향후 실적에서는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확실한 닛산의 앞날 = 닛산자동차는 심각한 경영난과 판매 부진 등으로 본사 건물까지 매각하며 재건을 모색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는 진단이다.
닛산은 지난 6일 실적 기자회견에서 요코하마에 있는 본사 건물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본사 건물을 특수목적법인(SPC)인 MJI를 대상으로 970억엔(약 9000억원)에 매각했다. 닛산은 매각과 함께 ‘세일앤드리스백’ 방식으로 향후 20년간 임대를 통해 건물은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닛산은 매각 대금에서 제비용을 제외한 739억엔(약 6950억원)을 3분기 실적에 이익으로 계상했다.
닛산의 본사 매각은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고 추가적인 투자활동에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반 에스피노자 닛산 CEO는 6일 기자회견에서 본사 매각 금액과 관련 “향후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 도입 등에 대한 투자에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닛산이 발표한 2025년도 4~9월 반기 결산에 따르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한 5조5786억엔(약 52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276억엔(약 2600억원) 적자를 보였고, 2219억엔(약 2조100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처럼 닛산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양상이다. 이는 본사 건물 매각에 따른 이익을 결산에 반영했는 데도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직접적인 원인은 판매 부진이다. 닛산은 이 기간 미국은 물론 유럽과 중국 등지에서 판매가 감소했다. 전세계 판매대수는 148만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 7.3% 줄었다.
지역별로는 일본 내 판매가 전년보다 16.5% 줄었고, 중국(-17.6%)과 유럽(-7.9%)에서도 감소했다. 그나마 미국은 주력 차종인 ‘로그’의 가격을 인하하면서 판매 감소가 0.9%에 그쳤다. 닛산은 2025년4월~2026년3월 사업년도 전체 판매대수는 전년도 연간 판매 규모에 비해 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영업실적은 가늠조차 못했다.
이에 앞서 닛산의 글로벌 판매대수는 2017년도 577만대까지 늘어나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40% 이상 감소한 334만대에 그쳤다. 닛산은 향후 2027년까지 9종의 신차를 출시해 판매 부진을 벗어난다는 계획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닛산 미국 공장에서 혼다와 대형차 부문의 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양사간 기술적인 협력 등에서 간극이 있어 예상보다 협력이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닛산과 혼다는 지난해 합병을 포함해 양측간 협력에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통합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이 있어 최종 결렬된 적이 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