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공기를 연료로 쓰는 위성, 초저궤도의 문을 두드리다

2025-11-11 13:00:01 게재

지구 주변에는 기상위성 통신위성 정찰위성 허블우주망원경 국제우주정거장 등 인간이 쏘아올린 인공물체들이 수없이 떠 있다.

지구 궤도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지구로부터 약 2000km 이내의 저궤도(Low Earth Orbit, LEO), 약 3만 5000km 거리의 정지궤도(Geostationary Earth Orbit, GEO), 그리고 그 사이의 중궤도(Medium Earth Orbit, MEO)다. 우리가 사용하는 GPS 위성은 중궤도에 있고, 통신위성은 정지궤도에 자리한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약 400km 상공의 저궤도를 따라 지구를 돈다.

최근 전세계가 새롭게 주목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초저궤도(Very Low Earth Orbit, VLEO)다. 지구에서 약 200km 근처의 초저궤도는 기존 저궤도보다 훨씬 낮다. 지구와 가까워 발사비가 적게 들고, 통신 지연이 작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영역은 오랫동안 ‘금지된 궤도’로 여겨져 왔다. 지구 대기의 잔여 입자들이 여전히 존재해 위성에 지속적인 항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항력이 커지면 궤도가 낮아지고, 결국 위성은 임무를 마치기 전에 지구 대기로 떨어진다. 항력을 상쇄할 만큼의 추력이 필요하지만 연료를 많이 싣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구 대기 ‘저항’을 ‘연료’로 바꾸는 기술

이 불가능의 영역을 다시 열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바로 공기를 연료로 쓰는 위성, 즉 입자흡입형 전기추력기(Atmosphere Breathing Electric Propulsion, ABEP) 기술이다. 이 기술은 초저궤도에서 잔여 대기를 흡입해 추진제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흡입된 대기는 전기추력기 내부에서 이온화되어 가속되어 추력을 만든다.

다시 말해 ABEP는 지구 대기의 ‘저항’을 ‘연료’로 바꾸어 궤도를 유지하는 기술이다. 이 아이디어는 2000년대 초 일본 우주항공개발기구(JAXA)에서 제안되었으나 아직 실증된 사례는 없다. 최근 여러 나라가 경쟁적으로 개발에 나섰고, 머지않아 기술 검증이 시도될 예정이다.

한국으로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국가 연구기관에서 초저궤도 유동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자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구팀과의 첫 미팅에서 그들이 이미 이 기술을 상당한 규모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도전적인 연구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반가웠다. 우리 연구팀은 프로젝트에 합류해 4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단순해 보일 것 같은 ABEP 설계에는 예상보다 많은 난관이 뒤따랐다. 200km 상공에서 위성은 초속 약 7.8km로 비행한다. 매우 빠른 속도이기 때문에 잔여 대기를 충분히 흡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밀도가 매우 낮은 200km 근방에는 단원자 산소(Atomic Oxygen, AO)가 다량 존재한다. 이 단원자 산소는 반응성이 높아 금속을 쉽게 산화시키며, 고체 표면에 잘 달라붙어 기체의 흐름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단순한 콘 형태의 흡입기(많은 연구팀들이 제시한 기본 형상)로는 충분한 양의 기체를 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ABEP는 정말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연구팀은 기존의 수동형 콘 구조 대신 입자를 능동적으로 포집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대기 입자를 조금씩 모아 얼려 저장한 뒤 필요할 때 녹여 추진제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초저궤도 환경에서는 전혀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 내용을 발표한 뒤 전세계 동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ABEP는 우주환경에서 실증된 사례가 없다. 실현을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개인 열정뿐 아니라 제도 뒷받침해야 성과

그때 그 국가 연구기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정부가 그런 도전적인 과제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 연구팀의 성과도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연구는 언제나 개인의 열정뿐만 아니라 그 도전을 믿고 지원하는 제도의 뒷받침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우주개발의 후발주자다. 미국을 비롯한 우주선진국들에 비하면 한발 늦게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선진국들의 발자국만을 따라가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주는 넓고, 아직 풀리지 않은 난제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남들이 이미 걸어간 길이 아니라 아직 누구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붙잡는다면 우리는 그 자체로 선구자가 된다. 초저궤도 연구 역시 그중 하나다. 그곳에서 우리는 추격자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여는 첫 번째 탐사자가 될 수 있다.

전은지 카이스트 교, 항공우주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