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기, 인수 노리는 에너지 4대 기업

2025-11-11 13:00:05 게재

엑손·셰브론 막대한 현금력 에퀴노르·셸도 확장 기회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며 석유 대형기업들의 인수합병(M&A) 움직임이 다시 포착되고 있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가 하락은 현금이 풍부한 기업들에게 인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과잉공급으로 내년 하루 400만 배럴의 초과 물량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에도 공급이 수요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엑손모빌(ExxonMobil)과 셰브론(Chevron)은 유럽 경쟁사보다 훨씬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두 회사는 최근 몇 년간 미국 텍사스·뉴멕시코의 페르미안 분지에서 중소 시추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며 규모를 키웠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주가는 각각 120달러, 17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애널리스트 평균 목표가는 각각 145달러와 185달러 수준이다.

이와 달리 중형 시추업체들은 피인수 대상으로 거론된다. FT는 “아파치(Apache)와 데번 에너지(Devon Energy)의 주요 프로젝트 가치가 시가총액을 웃돈다”며 “대형사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파치의 시가총액은 약 150억달러, 데번 에너지는 350억달러로 평가된다.

유럽에서는 에퀴노르(Equinor)와 셸(Shell)이 비교적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췄지만, 인수할 만한 매물이 적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대신 포르투갈의 갈프에네르기아(Galp Energia)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나미비아 해상 유전에서 수십억 배럴 규모의 석유를 발견하면서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25억달러 증가했고,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갈프는 브라질과 모잠비크에서도 사업을 확대 중이며, 지난해 세후이익이 10억달러를 넘어섰다.

다만 2024년 들어 주가가 약 28% 상승하며 이미 유전 개발 기대감이 상당 부분 반영된 상태다. 현재 갈프의 EV/EBITDA(기업가치 대비 이익 배수)는 4.72배로, 유럽 경쟁사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FT는 “갈프는 막대한 개발비가 필요해 셸, 토탈, 셰브론 등 글로벌 메이저와의 지분 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격적인 탐사 전략이 향후 시장 재편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부채가 많은 코스모스 에너지(Kosmos Energy)와 털로우 오일(Tullow Oil)은 유가 하락기에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털로우의 회사채는 액면가의 85센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어 재무 부담이 크다.

골드만삭스는 “석유산업의 확인 매장량이 2024년 기준 10년치 수준으로, 10년 전보다 25% 감소했다”며 “탐사 성과가 부족한 기업들은 인수를 통해서만 성장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FT는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현금흐름과 주가를 무기로 시장 재편의 주도권을 잡을 준비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결국 유가 하락은 위기이자 기회다. 부채 부담이 큰 기업은 매각에 내몰리는 반면, 현금을 쥔 대형사는 약세장에서 자산을 싸게 사들이며 장기 성장 기반을 넓힐 수 있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방어적 매입으로 시장을 주도한다면, 갈프에네르기아는 나미비아 유전을 발판으로 공격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석유 시장의 무게중심이 다시 미국과 아프리카로 이동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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