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기, 인수 노리는 에너지 4대 기업
엑손·셰브론 막대한 현금력 에퀴노르·셸도 확장 기회
FT는 “엑손모빌(ExxonMobil)과 셰브론(Chevron)은 유럽 경쟁사보다 훨씬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두 회사는 최근 몇 년간 미국 텍사스·뉴멕시코의 페르미안 분지에서 중소 시추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며 규모를 키웠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주가는 각각 120달러, 17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애널리스트 평균 목표가는 각각 145달러와 185달러 수준이다.
이와 달리 중형 시추업체들은 피인수 대상으로 거론된다. FT는 “아파치(Apache)와 데번 에너지(Devon Energy)의 주요 프로젝트 가치가 시가총액을 웃돈다”며 “대형사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파치의 시가총액은 약 150억달러, 데번 에너지는 350억달러로 평가된다.
다만 2024년 들어 주가가 약 28% 상승하며 이미 유전 개발 기대감이 상당 부분 반영된 상태다. 현재 갈프의 EV/EBITDA(기업가치 대비 이익 배수)는 4.72배로, 유럽 경쟁사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FT는 “갈프는 막대한 개발비가 필요해 셸, 토탈, 셰브론 등 글로벌 메이저와의 지분 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격적인 탐사 전략이 향후 시장 재편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부채가 많은 코스모스 에너지(Kosmos Energy)와 털로우 오일(Tullow Oil)은 유가 하락기에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털로우의 회사채는 액면가의 85센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어 재무 부담이 크다.
골드만삭스는 “석유산업의 확인 매장량이 2024년 기준 10년치 수준으로, 10년 전보다 25% 감소했다”며 “탐사 성과가 부족한 기업들은 인수를 통해서만 성장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FT는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현금흐름과 주가를 무기로 시장 재편의 주도권을 잡을 준비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결국 유가 하락은 위기이자 기회다. 부채 부담이 큰 기업은 매각에 내몰리는 반면, 현금을 쥔 대형사는 약세장에서 자산을 싸게 사들이며 장기 성장 기반을 넓힐 수 있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방어적 매입으로 시장을 주도한다면, 갈프에네르기아는 나미비아 유전을 발판으로 공격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석유 시장의 무게중심이 다시 미국과 아프리카로 이동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