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빚투’ 26.2조원…시장 과열에 연일 사상 최대

2025-11-11 13:00:07 게재

자본재·반도체 종목에 신용매수 쏠려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 파급 효과 커

국내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개인투자자의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가 연일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최근 수익률이 좋았던 조선·방산·전력인프라 등 자본재와 반도체 섹터에 신용매수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5대은행 신용대출 1주새 1.2조 폭증 =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국내 증시 신용융자 잔액은 26조216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5일 25조8224억원을 기록하며 2021년 9월에 기록한 25조6560억원 넘어선 후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신용융자 잔액은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금액이다.

시장별로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신용융자 잔액이 16조3465억원, 코스닥시장이 9조8700억원이었다. 연초만 해도 코스피 신용융자 잔액은 9조1577억원, 코스닥은 6조5245억원에 불과했으나 최근 지수가 단기간에 급등하자 빚투가 크게 늘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은행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 잔액이 이달 들어 1주일 만에 1조2000억원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7일 기준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105조9137억원으로 집계됐다. 10월 말(104조7330억원)과 비교해 1조1807억원 늘어 불과 1주일 만에 10월 한 달 증가 폭(9251억원)을 넘어섰다.

통상 신용대출 잔액은 변동성이 크지만, 7일까지 증가 폭만으로 지난 2021년 7월(1조8637억원) 이후 약 4년 4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대출 종류별로 보면,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1조659억원 급증했고, 일반신용대출이 1148억원 늘었다. 신용대출 급증세는 개인들의 주식 투자 확대와 맞물려 있다.

◆조선·방산·전력기기에 3.9조원 … 반도체 2조원 넘게 몰려 = 개인투자자들은 반도체·자본재 등 수익률이 높았던 종목을 신용으로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신용융자잔고가 증가한 올해 4월부터 10월 말까지(거래일 기준) 개인 투자자들의 업종별 매수 금액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조선·방산·전력인프라 등 자본재 업종의 신용융자 잔액은 약 3조9000억원으로 전체의 27.7%를 차지했다. 반도체주 신용매수 규모는 전체의 15.8% 수준인 2조2000억원에 달했다. 그다음으로 신용 융자잔액이 많은 섹터는 화학·철강·비철금속을 비롯한 소재 섹터로 전체의 10.8%(1조5000억원)를 차지했다.

올해 신용융자는 일부 섹터에 신용거래가 쏠려 반대매매 리스크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업종별로 보면 지난 2021년 대비 자본재와 반도체 업종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에 따른 해당 업종의 가격 하락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며 “두 업종이 코스피 시총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지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대매매는 주가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졌을 때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해 대출금을 회수하는 절차다.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개인투자자가 신용 투자한 업종의 주가 상승을 견인했기 때문에 환율 변동 및 대외 경제환경 변화로 인해 외국인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유출될 경우 해당 종목들의 급락 위험과 신용투자로 인한 파급효과 증폭 가능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현금매수와 신용매수 엇갈려 = 최근 유가증권시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개인투자자의 일반 현금매수와 신용매수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4월부터 10월 말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 방식을 살펴본 결과 일반매수에서는 순매도세, 신용매수에서는 증가세를 보이는 분리 양상이 나타났다. 지난 2021년 개인 투자자들이 현금매수와 신용매수를 동시에 확대하며 주가 상승을 주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10월 말부터는 개인은 대규모 순매수, 외국인과 기관은 순매도 양상을 나타내는 중이다.

현금투자자와 신용융자 투자자가 동일인일 경우, 반도체 및 자본재 종목의 순매도를 통한 차익 실현 후 식음료, 운송 등 타 업종으로의 자금을 이동하여 포트폴리오 위험을 분산하는 한편, 신용 공여가 원활하고 주가 상승세를 보이는 반도체·자본재 업종에서는 레버리지를 활용하여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투자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와 자본재 업종의 대형주는 담보가치가 높아 신용융자거래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순매도세와 함께 고객예탁금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반도체 및 자본재 종목을 매도한 투자자들이 새로운 업종에 대해 적극적인 신규 투자로 전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연구위원은 “다만 올해 신용융자 증가 기간에는 2021년과 달리 개인투자자의 신용투자와 일반투자가 분리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자본재나 반도체의 주가 하락이 발생할 경우 개인투자자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매매 급증 우려 = 문제는 빠르게 늘고 있는 반대매매다. 7일 기준 반대매매 금액은 약 380억원으로 연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한 달간 하루평균 금액(75억원)의 다섯 배에 달한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율도 1월 평균 0.49%에서 이달 7일 3.4%로 급등했다.

무섭게 치솟던 코스피가 ‘인공지능(AI) 거품론’ 재점화 등의 여파로 4000선에서 등락하면서 출렁이자 초단기 주식 외상 거래에서 발생한 반대매매가 급증한 것이다.

미수 거래는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2영업일 이내 대금을 갚는 초단기 외상이다. 만일 이렇게 미수 거래로 산 주식의 결제 대금을 투자자가 납입하지 못하면 증권사는 반대매매를 통해 주식을 강제로 팔아 채권을 회수한다.

외국인 자금 유출이 지속되면 신용융자 반대매매와 맞물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자 매수세가 개인투자자가 신용 투자한 업종의 주가 상승세를 견인했기 때문에 환율 변동, 대외 경제환경 변화로 인해 외국인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유출될 경우 해당 종목 급락 위험과 신용투자로 인한 파급 효과 증폭 가능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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