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늦춰질수록 불황 더 크게 온다

2025-11-12 13:00:04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침체 피하려는 정책이

오히려 위험 더 키워”

세계 경제가 15년 넘게 불황 없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10일(현지시간) “불경기를 지나치게 피하려는 정책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은 1300년부터 1800년까지 절반 가까운 기간이 불황이었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경기침체 빈도는 점점 줄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주요 선진국의 경기 변동성이 완화됐고, 지금은 OECD 회원국의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22~2024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3%를 기록했고, 올해도 비슷한 속도로 성장할 전망이다. 잡지는 “이제 경기침체가 멸종위기 종처럼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끝없는 성장’이 경제를 둔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는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비효율적인 기업을 정리하고, 자본과 인력을 더 생산적인 분야로 옮기게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에 따르면 경기침체기에 창업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시기에 태어난 기업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시기 미국과 유럽의 대응 차이도 이를 보여준다. 유럽은 해고를 막기 위해 수백만 명을 유급휴직 상태로 두었지만, 미국은 실업률이 15%까지 치솟는 대신 현금 지원을 통해 노동 이동을 촉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이후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10% 늘어난 반면 유럽연합은 2% 증가에 그쳤다”며 “불황이 효율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모든 불황이 이런 ‘건강한 정화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못한 채 ‘좀비기업’이 늘었고,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 세계 상장기업 중 만성적자 기업의 비중은 2000년 6%에서 2021년 9%로 증가했다.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2022년 에너지 가격 급등 때 유럽 각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하는 재정을 투입했고,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붕괴 때는 예금을 전액 보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모두를 위한 구제금융”이라고 표현했다.

그 결과 금융, 재정, 생산성 세 영역에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장기간 불황이 없다 보니 투자자들은 위험을 잊고 주식이나 인공지능(AI) 기업 등에 과도하게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가계가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한 금액은 3조달러로 사상 최대다.

정부 재정도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 연방정부의 잠재부채는 130조달러로, 경제 규모의 5배에 이른다. 생산성 면에서도 문제는 심화되고 있다. 낮은 이익에도 살아남는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더 경쟁력 있는 기업의 인력 확보와 성장이 가로막히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불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안정이 오히려 새로운 불균형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바뀌는 순환이 멈추면 경제는 점점 더 많은 재정지원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국 둔하고 비효율적인 구조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