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시대 도약하려면 자본시장 체질 개선 급선무”
향후 1~2년, K-증시 구조적 체질을 바꾸는 ‘정책 골든타임’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 “산업정책·세제지원·규제혁신 필요”
올해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한 가운데 5000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는 제언이 나왔다. 내년 코스피 상장사들의 이익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이전에 증시 추가 상승을 이끌기 위한 정책적 과제들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향후 1~2년이 한국 증시의 구조적 체질을 바꾸는 ‘정책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증시 세 번째 대세 상승장 진입” = 한국거래소는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코스피 5000 시대 도약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코스피 사상 최고치 경신을 계기로 밸류업 추진 성과를 조명하고, 학계 및 자본시장 전문가들과 코스피 5000 시대로의 도약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첫 번째로 주제를 발표한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 최고치 경신의 의미와 향후 시장 전망을 설명하며 “올해는 한국 증시 50년 역사상 세 번째 대세 상승장에 진입한 해로 과거 사례를 볼 때 이번 상승장은 3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주제 발표에서는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밸류업 및 지배구조 개선 입법의 성과와 과제’를 설명하며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과와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상장기업의 가치제고 노력을 통해 한국 증시를 도약시키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도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며 “국내외 기관투자자들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 증대를 위해서는 밸류업 정책의 지속적 추진이 필요하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황 연구위원은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정책과 연계한 향후 추진 과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 설계 시 고려할 사항과 함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또 그는 “주주총회 집중일 조정, 사업보고서 제출 시점 개선, 의무공개매수 제도 정비, 기관의 스튜어드십 코드 등록·이행 점검 강화, 의결권 행사 비교 공시 등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내년 코스피 5000 도약의 분수령 = 패널 토론에 참가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내년 상장사 이익이 정점을 찍기 전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느냐가 ‘코스피 5000’ 도약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일관된 산업정책과 세제 지원, 규제 혁신 등이 필요하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성장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빠르게 늘어났으며, 최근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그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며 “국내 설비투자가 해외로 이전되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잠재 성장률 추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내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국가가 산업정책·금융시스템에 직접 관여하는 ‘국가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며 “제도적 기반도 중요하지만, 결국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좌우하므로 산업정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스마트폰·2차전지 분야의 밸류체인(공급망)은 이미 중국이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도 나온다”며 “미국이 중국 공급망을 제재하는 작금이 산업·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좋은 기업이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투자를 받기 어렵다”며 “기업이 연구개발(R&D)과 적극적인 IR 활동을 통해 성장 가능성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성장을 뒷받침하려면 규제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업종의 주가는 이미 미래 이익 성장 기대를 상당 부분 선반영하고 있다”며 “2027년 반도체 업종의 이익이 고점을 찍고, 내년부터 다른 업종의 이익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한다면 주가 상승세도 내년쯤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반도체 모멘텀이 둔화되기 전, 즉 내년 상반기까지 주요 정책이 속도감 있게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센터장은 △장기보유 주주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도입 △혁신·비상장기업에 대한 프리IPO(상장 전 투자) 및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최근 증시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을 경고하기도 했다. 황 센터장은 “신용융자 잔액이 연초 9조원에서 16조원으로 78% 증가했고, 레버리지 상장시수펀드(ETF) 투자액도 47% 늘었다”며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조정이 발생할 경우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거래소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대전환과 연계해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거래시간 연장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자본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와 토큰증권(STO) 시장 개설 등 자본시장 패러다임 변화에도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개선해 기업 스스로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주주가치 존중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