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회계업계 변화 거세…효율성 향상으로 감사보수 하락 ‘역설’

2025-11-13 13:00:02 게재

대형 회계법인 생산성 20~40% 향상

반복적 정형화된 업무 부담 크게 줄어

신입 회계사 취업난 … “200곳에서 거절”

회계분야 AI 연구자료 최근 10년치 분석

인공지능(AI) 도입으로 회계업계에도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회계감사업무에 AI를 활용함에 따라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지만 대형 회계법인과 중소회계법인의 양극화, 감사 보수의 하락, 회계사 취업 문제까지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회계학계에서는 머신러닝(ML)과 AI를 활용한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이뤄졌으며 AI도입이 회계업계의 위협이자 기회라는 상반된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일 한국회계학회가 발간한 회계학연구 10월 특집호에 실린 ‘회계학에서 머신러닝 및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문헌 연구’에서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해외 ML과 AI 관련 연구논문 61편과 국내 연구논문 13편을 비교·분석했다.

◆빅4회계법인, AI 기술 업무에 적극 활용 = 국내 연구논문들에서 나타난 회계 실무에서 AI 도입은 대형 회계법인인 빅4(삼일PwC, 삼정KPMG, EY한영, 딜로이트안진)를 중심으로 AI 기술 적용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들 회계법인들은 고유한 플랫폼과 솔루션을 개발해 감사품질 향상과 업무효율성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삼일PwC는 작년 하반기부터 생성형 AI 기반의 프라이빗 엔진을 업무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증빙문서의 주요 내용을 광학문자인식장치(OCR)로 읽고 추출하는 등 검토 절차 자동화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PwC는 25억달러를 AI 기술에 투자해 ChatPwC 플랫폼을 통해 20만명의 직원이 활용하고 있다. 생산성이 20~40% 가량 향상된 것으로 보고됐다.

이와함께 3000개 이상의 내부 생성형 AI 활용 사례를 발굴하고 있으며, 2026년 차세대 감사 플랫폼의 전면 도입을 예정하고 있다.

삼정KPMG는 지난해 스마트 감사 플랫폼 KPMG 클라라(Clara)에 생성형 AI 기능을 도입해 위험평가, 실증절차 수행, 감사조서 작성 등 감사 전반에서 효율화를 실현하고 있다. 클라라에 도입된 AI는 대량의 문서를 빠른 속도로 검토하고 초기 위험 요소를 식별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트랜잭션 스코어링(Transaction Scoring)을 통해 KPMG의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통계 시나리오 기술을 결합, 기업의 각 거래를 분석하고 위험 수준을 제시한다.

또 감사 절차 자동화 시스템 데이터스니퍼(DataSniffer)와 회계·감사 지식 검색 시스템 오딧세이(AuditSay)에도 생성형 AI를 연계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KPMG는 21억달러를 투자해 Clara AI를 9만명 이상의 글로벌 감사인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217만5000건 이상의 대화 기록과 100개 이상의 감사 전용 프롬프트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EY한영은 14억달러를 투자해 EY.ai 플랫폼을 출시했다. 올해 3월에는 엔비디아와 협력 개발한 EY.ai Agentic Platform을 통해 40만명의 글로벌 직원이 활용하는 통합 AI 플랫폼을 구축했다.

딜로이트 안진은 올해 6월 ‘AI Asset & Analytics’ 그룹을 새롭게 출범시켜 AI 시대 재무·회계 솔루션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옴니아(Omnia) 플랫폼의 생성형 AI 통합 감사 솔루션과 1만8000명의 감사 전문가가 활용하는 내부 챗봇 DARTbot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딜로이트는 20억달러를 투자해 100개 이상의 생성형 AI 가속기를 개발했으며 ‘Deloitte AI Academy’를 통해 12만명 이상의 전문가 교육을 완료했다.

◆현행 감사보수 산정 체계에서는 보수 하락 압박 = 연구를 진행한 임지해 하와이 대학교 교수와 나현종 한양대학교 교수는 “감사 영역에서 ML/AI 기술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예측 능력의 향상”이라며 “머신러닝 모델을 활용한 부정 탐지 연구들은 기존 방법 대비 20-30%의 성능 향상을 보고하고 있고 회계 변수와 감사 및 시장 변수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패턴 분석도 가능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측 능력의 개선은 감사 실무에서 예측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영역들, 즉 고객 수임 여부 결정, 부실 징후 탐지, 위험 평가 등에서 감사인의 판단을 효과적으로 보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드론을 활용한 재고 실사나 자동화된 문서 검증 등은 감사인의 시간당 업무 효율을 높이고,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에서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하지만 현행 감사보수 체계가 투입 시간과 인력을 기준으로 산정되면서 효율성 향상이 오히려 보수 인하 압력으로 작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임 교수와 나 교수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가져오는 비즈니스적 함의는 다소 역설적”이라며 “실제로 회계법인의 특허 활동이 감사 수익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감사보수가 낮아지면 회계법인들이 기술 투자에 대한 수익을 컨설팅이나 자문서비스를 통해 회수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감사인의 독립성에 대한 새로운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기술 혁신이 감사 품질 향상에는 기여하지만, 그 경제적 혜택을 회계법인이 온전히 향유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존재하고,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가 감사인 독립성이라는 또 다른 핵심 가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업무 방식 변화, 신규 채용 줄면서 취업 대란 = AI기술의 확산은 회계 전문직이 수행하는 업무의 성격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신입 회계사들이 반복적인 데이터 검증과 문서 작업을 통해 업무 경험을 쌓았지만 이제는 AI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대학의 회계 교과과정에서는 전통적인 장부 작성이나 계산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AI 도구 활용법, 데이터 해석 능력, 그리고 AI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해졌다.

임 교수와 나 교수는 “실제로 지난해 빅4 회계법인의 신규 채용 감소는 경기 침체와 함께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단순 반복 업무의 자동화로 인해 전통적인 주니어 역할이 축소되는 동시에, 보다 높은 수준의 분석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춘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회계 전문직의 입직 경로와 역량 개발 방식에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규 회계사 채용 문제는 최근 국내 회계업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취업을 하지 못해 수습기관을 배정받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가 올해 합격자 1200명 중 절반인 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청년 회계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청년 회계사 600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회계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수습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을 호소하며 회계사 선발 인원 축소를 촉구했다. 사진 공인회계사 선발인원 정상화 비상대책위원회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는 600여명의 청년 회계사들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회계사 최소선발 예정인원을 1000명으로 줄여야 한다며 △회계사 선발인원의 ‘정상화’ △수습 인프라 기반 정책의 전면 재정비 △표준감사시간제도 도입과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전면 시행을 촉구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회계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회계법인에서 거절당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200곳이 넘는 회계법인과 기업에 지원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6년간의 수험생활을 마쳤지만 다시 2년간 200곳 넘게 문을 두드려도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그 어떤 회사도 수습공인회계사를 원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임 교수와 나 교수는 “회계 전문직 분야에서는 기술적 역량과 분석적 사고에 대한 새로운 역량 요구와 함께 대형 회계법인과 중소형 회계법인 간, 그리고 개별 회계사 간의 심각한 격차 확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AI 시대 회계 실무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장 메커니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정책적 개입과 전문직 단체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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