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지자체까지…종묘 공방 전면전
정부-서울시-국회-지자체 입장 갈려
주민·학계까지 나서며 전면 충돌 국면
서울 종묘 일대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국회와 지자체, 주민과 학계까지 가세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13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세운4구역 일대 재개발 비판에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직접 종묘 인근 개발 이후 조감도를 공개하며 “종묘 앞 초고층 논란은 과도한 오해”라고 진화에 나섰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종묘 인접부는 약 20층, 청계천변은 30층 등 종묘에서 멀어질수록 높이가 올라가는 단계적 높이 계획”이라며 “20년간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방치됐던 지역의 재생을 위한 합리적 개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와 일부 지자체는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여당 소속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은 12일 공동성명을 내고 “세계유산인 종묘를 볼모로 한 개발행정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무리하게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시는 “도심공동화와 낙후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맞서고 있다.
지자체장들까지 논란에 가세했다. 종로구는 시와 보조를 맞추며 “장기 정체된 지역의 활력을 되살릴 계기”라고 평가했고 반대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종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개발을 병행할 방법은 충분히 있다”며 “현재 계획은 문화유산 경관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비판에 동참했다.
논란은 주민들에게 번졌다. 세운4구역을 포함한 재개발지 주민들은 “20년 가까이 멈춰 선 채 낙후만 가중됐다”며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도 검토 중이다.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 계획은 수십년 지연됐던 재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절충안”이라며 문화재청과 정부를 향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역사·문화 관련 단체들도 잇따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화유산시민연대 등 33개 단체는 12일 공동성명을 통해 “세계유산 종묘의 경관과 역사적 위상을 훼손하는 개발은 용납될 수 없다”며 “서울시는 즉각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도시재생을 이유로 한 고층 건물 건설은 문화유산에 대한 시대착오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입장 차가 첨예하게 갈리면서 종묘 일대 재개발 논의가 사실상 정치 공방으로 변질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당은 ‘보존을 위한 제동’을, 서울시는 ‘활성화를 위한 현실적 해법’을 내세우며 정면충돌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논의의 무게중심이 정치적 해석으로 기울고 있다”며 “개발과 보존을 아우를 사회적 합의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회를 비롯해 지자체, 주민과 학계까지 종묘 공방에 가세하면서 이번 논란이 내년 지방선거의 전초전이 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세훈 시장측은 서울 재건축·재개발을 내년 지방선거 핵심 쟁점으로 꼽고 있다.지난 2021년 보궐선거 당시 오 시장을 당선 시킨 가장 중요한 이슈 역시 ‘부동산’이었다. 간신히 지핀 서울 재건축·재개발 불씨를 유지하고 확대할 사람은 오세훈뿐이라는 이미지로 선거를 준비 중인 만큼 이번 논란에서 물러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 오 시장 주변의 분석이다.
정원오 구청장을 비롯한 일부 잠재적 서울시장 후보군들이 연이어 종묘 보존을 내세우며 맞불을 놓고 있는 것도 서울시장 선거 전초전을 연상케 한다. 보존 대 개발이라는 오래된 논쟁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상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서로 다투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세를 선점한다는 측면이 있는 만큼 양측이 법과 논리를 모두 동원해 물러서지 않고 충돌할 것”이라며 “해법은 뒤로 한 채 공방이 난무하며 내년 선거 때까지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