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캄보디아 평화 협정 사실상 결렬
태국 군인 중상 트럼프 중재 무색
방콕 “협정 중단” 프놈펜 “혐의 부인”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휴전 협정이 지뢰 폭발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결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재한 국제적 평화 합의가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AP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11일(현지시간) 자국 군인이 캄보디아와의 국경 순찰 중 지뢰에 부상당한 사건 이후 캄보디아와의 모든 군사 협정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건은 태국 동북부 시사켓 주에서 발생했다. 태국군은 해당 지역에서 소련제 대인지뢰 PMN-2가 폭발해 군인 네 명이 부상하고 이 중 한 명은 오른쪽 발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추가로 3개의 유사한 지뢰가 현장에서 발견됐다.
태국군 최고사령관 우크리스 분타논 대장은 군 공식 계정을 통해 “캄보디아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는 확실한 행동이 확인될 때까지 모든 협정 이행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국 총리 아누틴 찬위라쿨도 “명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절차를 보류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태국 외무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력한 외교적 항의 서한을 캄보디아 정부에 전달했다. 아울러 정부 대변인 시리퐁 앙카사쿨키아트는 “캄보디아 측에서 설명이나 후속 조치가 없을 경우 태국은 외교적 선언 자체를 철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놈펜은 이러한 태국의 비난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캄보디아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분쟁 지역에 새로운 지뢰를 매설한 사실은 없으며 문제의 지뢰는 과거 내전 당시 매설된 유산”이라고 반박했다. 캄보디아 국방부도 태국에 해당 지역 순찰 자제를 촉구하며 기존 확장 휴전 협정의 틀 안에서 협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10월 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체결된 확대 휴전 협정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해 양국 정상을 중재했고 중화기 철수와 캄보디아 전쟁포로 18명 송환 등을 골자로 한 평화 협정이 성사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두 번째 임기 중 해결한 8건의 분쟁 중 하나로 대외에 과시해온 성과였다.
그러나 협정 체결 불과 2주 만에 다시 무력 충돌 위기가 고조되면서 트럼프의 외교 성과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양측에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고 협정 이행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분쟁은 수십 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817km에 달하는 국경은 1907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처음 그어진 이후 지금까지 명확한 경계가 정리되지 않았고 고대 사원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핵심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양국이 5일간의 교전을 벌여 최소 48명이 사망하고 약 30만명의 주민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제재 경고와 함께 중재에 나서면서 일시적 휴전이 성사됐지만 지뢰 사건을 계기로 갈등은 다시 격화되는 양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