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수산업 현장을 가다 ② 로포텐 대구
5대째 이어온 가족기업이 11개국에 800만달러 수출
“로포텐 대구 없었으면 대도시도 성당도 없었다” 자부심 가득 … 기후·문화 변화 속 대구산업도 적응 몸부림
노르웨이 북부 노를란주(주도 보되)에 여러 섬들로 이뤄진 로포텐은 유럽 최대, 세계 9위(노르웨이 수산청) 어업국 노르웨이의 상징 중 하나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험준한 산과 넓은 바다, 잘 보호된 청정 해변과 피요르드들이 어울린 원시적 풍경은 옛 제주와 거대한 울릉도를 연상케 하는 세계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면적은 제주도 3분의 2 규모(1227㎢)다.
1만1000여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있지만 지금은 노르웨이 전체 인구 550만명 중 0.4% 수준인 2만4000여명이 살고 있다. 어업인도 줄어들어 지금은 2000여명이 남았다.
기후변화로 대구 자원량이 감소하면서 총허용어획량(TAC)도 줄어들고 있지만 이들이 이어가는 대구산업은 노르웨이 수산업에서 청어 고등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어업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이곳에서 잡는 바렌츠해 대구의 총허용어획량은 34만톤으로 노르웨이에 할당된 양은 16만3436톤 규모다. 나머지는 러시아와 제3국에 배당했다. FAO는 “이번 할당량은 2024년보다 25%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1991년 이래 가장 낮은 수”라며 “이는 자원과 관련된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곳곳에 보이는 대구덕장은 강원도 황태덕장을 연상케 한다. 대구를 말리는 덕장에는 허수아비를 세워둔 곳들도 있다. 새들이 대구를 쪼아먹는 것을 막아보려는 시도지만 효과는 별로 없다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과 북서쪽 끝에서 비슷한 문화를 발견하면 사람이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곳에서 5대째 대구를 가공해 수출하는 수산업자 자녀들이 사업을 이어갈지 불확실하다고 한다. 목수 일을 하다 작은 어선을 구입해 연안에서 대구와 광어 아귀 등을 잡는 어부도 세 자녀가 로포텐에 있지만 모두 어업을 하지는 않는다.
지난 8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만난 로포텐 어업인들은 자부심이 가득했지만 기후와 문화의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노르웨이 어업의 모습도 보여줬다.
◆휴대폰으로 조업상황 보고하는 연안어부 = 8월 17일 이른 아침에 만난 게이르 헐바르트 닐쎈(60)은 38세 되던 2003년부터 전문적인 어부가 됐다. 목수 일을 하던 그가 어부가 된 것은 어린시절 삼촌과 함께 고기잡이하던 기억과 대구 혀를 뽑는 놀이(노르웨이 전통 문화)를 하며 용돈을 벌던 기억들도 영향을 줬다.
매년 1~3월 로포텐에 대구철이 돌아와 한창 바쁠 때는 일손이 부족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며 대구 혀를 뽑는 일을 시켰고, 아이들은 누가 더 빨리, 많이 뽑는지 시합했다. .
그의 아버지도 어부였다. 그가 10대 때 아버지는 작은 배를 사서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 닐쎈은 “목수를 하면서도 어부를 생각했는데 자유가 많고 스스로 ‘보스’가 돼서 일할 수 있다는 게 매력있어 어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형과 함께 나무로 된 중고 어선을 샀다. 바이킹 때 쓴 것 같은 배였지만 시행착오가 많았고 버는 것보다 지출이 더 많았다. 두번 째 구입한 배는 대구철 직전에 침수됐다. 그는 “그물도 다 준비했는데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지금 사용하는 배는 2018년 세번 째 구입한 배다. 중고어선을 거래하는 곳에서 경쟁을 뚫고 힘들게 샀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8m 길이가 안되는 것으로 샀다. 8m가 넘으면 새로운 배로 바꿔야 한다.
닐쎈은 올해 잡을 수 있는 대구 어획량(TAC)으로 5000kg을 받았다. 다른 해 보다 줄었는데, 킹크랩 쿼터도 줄었다.
그는 “노르웨이와 러시아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자원조사하고 쿼터를 배정하는데 자원량이 줄어들어 쿼터도 줄었다”고 말했다. 할당량은 줄었지만 대구 가격은 1kg당 80크로네(8달러 = 1만1600원) 수준으로 예년에 비해 좋은 편이다. 양이 줄면서 가격이 오른 것이다. 5000kg을 팔면 4만달러(5800만원)가 된다.
대구(Cod)는 주로 1~3월에 잡고, 대구철이 끝나면 대구과에 속한 해덕(Haddock)을 잡기도 한다. 해덕은 연안으로 오지 않을 때도 있어 지난해에는 4~5월 사이 1만1000kg 잡았지만 올해는 안 와서 못 잡았다고 했다. 해덕은 kg당 2~3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잡은 해덕으로 2만~3만달러를 벌었다. 그는 한 해 10여종의 물고기를 잡는데, 연안에서 조금 더 나가 붉은 고기도 잡는다. 8월에는 아귀와 광어를 잡고 있었다. 그는 “대구와 아귀, 광어가 돈이 된다”고 말했다.
닐쎈은 한국에서 온 일행과 16일 만나 바다에 나가 아귀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을 걷어올릴 계획이었지만 배가 고장이 나서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 17일엔 이른 아침 수리하러 가기 전 시간을 냈다. 배 수리는 로포텐제도의 중심마을 스볼베르에서 한다. 엔진문제는 더 먼 곳으로 나가야 한다.
작은 어선에서 혼자 조업하는 닐쎈은 조업 중에도, 조업 후에도 휴대폰으로 조업상황을 정부에 보고한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그물을 잃어도 신고하는데 유실지점을 보고해야 한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어부들이 신고한 유실그물이 가라앉은 지점들이 표시된 정부 사이트를 보여줬다. 바다 속에 가라앉은 유실 그물은 정부와 지자체가 걷어간다.
닐쎈의 윗 옷에는 가슴에 두 개의 큰 주머니가 있고, 각각 다용도 칼과 휴대폰이 들어있다. 다용도 칼과 휴대폰은 2023년 11월 사고 이후 반드시 휴대한다.
당시 홀로 작업하다 그물에 걸렸는데 배는 앞으로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칼과 휴대폰은 선실에 있었다. 그는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고, 주변 양식장에서 친구가 와서 구해줬다. 그는 헬기를 타고 보되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했다. 그는 “혼자 작업하는 일은 노르웨이에서도 위험한 일”이라고 했지만 “전 세계가 아름답고 깨끗한 노르웨이 바다와 자연에서 생산한 수산물을 먹고 있다”며 어부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도 연안어업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는 “로포텐에서도 큰 규모의 어업은 유지되고 있지만 작은 규모의 어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아이들은 모두 스볼베르에 있는데 그 중 정유회사에 다니는 큰 아들이 취미로 어업을 하기 위해 친구와 배를 샀지만 당국에서 고소득자는 취미로 어업을 하면 안된다고 허가를 하지 않아 다시 배를 팔았다”고 말했다.
◆세계인의 입맛 사로잡은 북극 대구 = 로포텐의 시푸드센터는 연어양식장 체험시설과 함께 대구어업과 가공산업 전통을 체험하는 교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닐쎈을 만난 후 방문한 시푸드센터에는 말린 대구도 전시해 놓았다. 이곳에 있는 대구는 낚시로 잡은 것으로 그물로 잡은 고기보다 품질이 좋고 비싸다.
세계 시장에서도 노르웨이 대구는 인기다. 로포텐에서 잡는 대구는 스크레이(skrei)라고 불리는 북극대구로 최고 품질, 품종으로 평가받는다. 스크레이는 떠돌아다닌다는 뜻을 가진 옛 노르드어에서 기원했다. 바렌츠해에서 성장한 후 성숙하면 노르웨이 연안으로 돌아와 산란하고, 부화한 대구는 다시 바렌츠해에서 성장한다. 회유기간은 4~6년 걸리는데, 근육이 단단한 회유어종 특징을 가졌다.
이런 대구를 그물이나 낚시로 잡는데 트롤 선망(그물) 수평낚시 수직낚시 등 5가지 방식이 있다. 낚시에 사용하는 미끼는 한 번 사용한 것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은 수직낚시로 잡은 대구로, 500m 길이 낚시줄에 1m 간격으로 미끼를 달아서 수작업으로 잡는다.
시푸드센터에서 대구 저장·판매장을 안내한 매니저는 “먼 길을 다니던 바이킹들은 길 표시를 할 때 대구를 사용했고, 원거리 항해를 할 때도 말린 대구를 식용으로 사용했다”며 노르웨이인들의 유전자(DNA)에 각인된 대구를 말했다.
로포텐의 제이엠 란가스(J.M. Langaas)는 대구를 가공 저장 판매하는 가족기업이다. 대표 존 마틴(42)은 5대째 기업을 이어오고 있다. 3대 할아버지는 남부 베르겐으로 말린 대구를 팔러 가기 위해 산뇌스욘에서 로포텐으로 배를 가져왔다.
베르겐 어업박물관에서 본 어업인 가족의 기도는 마틴을 포함한 로포텐 어업인들의 이야기였다.
기도문에는 배를 타고 멀리 베르겐까지 북해의 험한 바다를 나가는 집안의 가장이나 큰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마음과, 먼 바닷길을 떠나며 남은 가족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가장과 큰 아들의 마음이 간절하게 담겨있다.
마틴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열다섯살 되던 해부터 가업을 기록하고 있다. 란가스의 역사를 담은 노트에는 선대 할아버지들의 사진과 작업장, 배 사진도 담겨 있었다.
그는 31세가 되던 2014년, 사업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아버지에게 “내가 고향에서 물려받아 일하겠다”고 말하고, 전문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가족들을 도우며 선원교육을 받고 크루즈회사에서도 5년 일했다. 마틴은 3남매 중 장남이고 남동생은 어선 4척을 가진 어부다.
란가스는 한 해 6000톤까지 대구를 가공·저장해 수출한다. 100% 자연건조 방식이다.
건조할 때 온도는 영하 3도에서 영상 3도 사이를 지킨다. 너무 낮은 온도에서 건조하면 대구의 섬유질이 파괴돼 식감이 떨어진다.
염장대구는 포르투갈, 건조해서 다시 물에 불린 대구 등은 이탈리아로, 대구 머리는 아프리카로 수출한다.부산물도 97% 가공해서 판매하는데 한국에도 곤이(Cod Milt)를 수출한다. 지난해 700톤을 수출해 800만달러(116억원)를 벌었는데 수출지역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지역와 브라질 미국 등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가공공장에서 대구를 선별하는 기술자(셀렉터)는 형광등 불빛에 대구를 비춰보고 등급별로 판정했다. 최소 8년은 일해야 연봉 1억5000만원 수준의 셀렉터가 돼 대구 선별작업을 할 수 있다.
마틴은 “트론헤임의 유서 깊은 니다로스성당도 대구잡이와 상인들의 성금으로 지었고, 로포텐에서 대구를 잡지 않았으면 베르겐같은 대도시도 없었을 것”이라며 로포텐의 대구산업에 대해 자부심을 보였다.
하지만 5대를 이어온 그의 일도 마틴에서 끝날 수 있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그는 “딸도 열다섯살이 되면 가업을 기록해 가면 좋겠지만 이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나도 더 나이가 들면 일을 정리하고 관광 관련 사업을 할까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로포텐(노르웨이) = 정연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