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제2의 팔란티어, 안두릴이 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신흥 방산기업 안두릴(Anduril Industries) 이 전세계 군사·산업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 2017년 ‘오큘러스(Oculus)’ 창업자 팔머 럭키(Palmer Luckey) 가 세운 이 회사는 인공지능(AI)과 자율 시스템을 결합해 전쟁의 설계·지휘·결정을 자동화하는 ‘AI 전장 운영체제(OS)’를 만든다. 회사명 ‘안두릴’은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보검 안두릴에서 유래했다.
오큘러스를 창업한 이후 2014년 페이스북에 매각한 팔머 럭키는 팔란티어 경영진들과 함께 안두릴 인더스트리즈를 설립하고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격인 피터 틸(Peter Thiel)의 파운더스 펀드로부터 초기투자를 받았다. 팔란티어가 데이터 분석으로 전쟁의 정보를 제공했다면, 안두릴은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명령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는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협업하고 있다.
최근 미국 월가에서는 안두릴의 상장(IPO)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된다. 기업가치 평가는 이미 120억달러(약 16조원)를 넘겼다. 미 국방부의 주요 AI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팔란티어의 후계자’ ‘전장의 오픈AI’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안두릴의 상장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기업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AI가 전쟁과 산업의 질서를 동시에 재편하는 전환점이라는 데 있다.
안두릴이 재편할 전쟁과 산업 혁신의 전환점
안두릴의 핵심 기술은 ‘래티스(Lattice)’라는 전장 AI 플랫폼이다. 수천 대의 드론과 센서, 자율 무기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실시간으로 판단과 명령을 내린다.
AI가 전황을 분석하고 인간은 결과를 승인하는 구조다. 이 같은 변화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팔란티어가 첫 선을 보인 이래 방위산업의 ‘민간 테크화’를 가속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자본과 AI 기반 스타트업들이 우주 항공, 군수산업 시장에 진입하면서 안보기술의 패권지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군수품은 오랜 개발 기간과 국가 예산이 필수였지만 이제는 스타트업의 혁신속도와 민간투자로 무기체계가 만들어진다. 피터 틸이 강조한 “기술은 곧 국가 안보”라는 신념이 현실화된 셈이다.
안두릴은 미국 군수 방위산업의 전통적 거인 록히드마틴 노스럽그루먼 보잉 레이시온테크놀로지 등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전통 메이저 방산기업 시대에서 AI 기반 전장 운영체계(OS)의 시대로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미 해병대는 안두릴의 무인정찰 시스템을 실전 배치했고, 미 공군은 AI 드론 편대의 자율 전투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방위산업의 경계 밖으로 확산하고 있다. 군사 AI의 핵심인 자율 판단, 실시간 제어, 데이터 통합 기술은 물류 조선 항공 에너지산업으로 빠르게 이전되고 있다. 결국 안두릴은 AI 군사 기업이자, 차세대 산업 자동화 플랫폼 기업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변화의 파장은 한국에도 닿고 있다. 안두릴은 최근 한국의 항공 조선 방위산업체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자율 무인잠수정, 해양 감시 AI, 드론 방어망 등에서 HD현대중공업 대한항공 LIG 넥스원 국방조달본부 등과 MOU를 맺거나 공동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 10위권 방산 수출국이다. 여기에 AI 기술을 결합하면 단순한 제조 중심에서 AI 기반 전장 시스템 수출국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문제는 속도다. 안두릴의 성장배경에는 민간 기술의 군사 전환과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있었다. 반면 한국의 방산·제조업은 여전히 공공 조달 중심의 구조, 복잡한 승인 절차, 낮은 위험 감수율에 머물러 있다. AI 전환이 ‘정책 시범사업’ 수준에 머무는 동안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민간자본이 안보를 설계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견인했던 전통 제조업도 이 흐름에 구태의연하고 느리게 대응하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AI 혁신의 파도 앞에서 타느냐 뒤로 밀려나느냐가 생존선 갈라
안두릴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기존 산업질서에 대한 파괴적 도전이다. 기술이 국가안보의 중심이 되고 전쟁조차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설계하는 시대다. AI는 기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존재다. 이 변화를 과소평가한 개인 기업과 정부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AI는 이미 산업과 국가의 경쟁질서를 바꾸고 있다. AI 혁신의 파도를 앞에서 타느냐, 뒤로 밀려나느냐가 생존선을 가를 것이다. 기술의 방향을 읽고 움직이는 개인 기업 국가만이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