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달러 약세가 내수경제 억제한다

2025-11-17 13:00:02 게재

대만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약한 환율 정책이 내수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 금융 팟캐스트(Money Talks)와 같은 날 공개된 에단 우(Ethan Wu) 아시아 비즈니스·금융 편집인의 기고문(Leader)은 “대만달러 약세가 수출기업을 돕는 대신, 소비자의 실질소득과 금융 안정성을 희생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은 외환보유액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을 만큼 달러를 지속적으로 매입해왔다. 기고문에 따르면 대만달러는 ‘빅맥지수’ 기준으로 달러 대비 55% 저평가돼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다. 이로 인해 대만의 경상수지 흑자는 GDP 대비 16%에 이르며, 중국(3%)을 크게 웃돌고 있다.

에단 우 편집인은 현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대만의 약한 환율은 사실상 소비자에게 부과되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은 식량·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기 때문에 통화가 약하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가계 부담이 커진다. 그는 “이 정책은 제조업을 성장시켰지만, 정작 대만 국민은 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뉴욕 금융기자 마이크 버드는 “생활비 상승과 임금 정체가 누적되고 있지만, 환율 정책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대만 사회에서 충분히 인지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별 현안은 정치적 논쟁이 되지만, 약한 환율이라는 공통 구조는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택시장 과열도 같은 맥락이다. 대만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외환을 매입하며 공급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유입돼 1998년 이후 주택가격이 네 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진단했다.

금융 위험도 심화하고 있다. 대만 보험업계는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데, 부채는 대만달러로 구성돼 있다. 기고문은 이러한 구조를 “대만 금융 시스템의 심장부에 자리한 통화 불일치 위험”이라고 평가하며, 환율이 강세로 전환될 경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 정상화가 어려운 이유도 분명하다. 이 매체의 워싱턴 경제기자인 앨리스 풀우드는 “대만 제조업 근로자의 약 70%가 환율 변화에 취약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어 정책 전환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 수익을 정부 재원으로 이전해온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본 사례 역시 대만에 경고를 준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엔화 강세를 겪었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유동성을 풀었다가 자산 거품과 금융 위기로 이어졌다. 에단 우 편집인은 “대만이 성급하게 환율을 정상화할 경우 일본과 유사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도 대만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의 환율 정책을 ‘비관세 장벽’으로 의심해왔으며, 올해 5월 협상 기대감만으로도 대만달러는 단기간에 9% 급등했다. 미국의 대만 정책이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환율 문제는 언제든 양국 관계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만이 결국 수출 중심 모델을 넘어 내수 기반 강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에단 우 편집인은 “고통스러운 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지금의 경제 모델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수출 호황은 눈부시지만, 그 이면에서 가계와 내수경제가 지불하는 비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힘을 얻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