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당신의 창의성 f(x)는 어떻게 정의되나

2025-11-18 13:00:02 게재

11월 둘째주 목요일,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큰 시험이 치러졌다. 이 수학능력시험(수능)을 중심으로 한 입시체제는 과연 창의적 사고를 억제하는가? 자, 이 질문에 ‘소신껏’ 답하지 말고 끝까지 읽은 후 ‘과학적’으로 답해보자.

우선, 창의성의 정의와 구성 요소는 무엇인지, 어떤 단계를 거쳐 창의적 문제해결을 하게 되는지, 그런 역량을 키우려면 학습 경험을 어떻게 설계해서 적용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창의적인지 어떻게 판단할지 따져야 한다. 이런 질문은 인지과학 교육공학 심리측정학 경영학 등 여러 학문에서 다루어진다. 그 모든 분야를 이 짧은 글에서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 대신 요리를 해보자.

당신은 한국에서 나고 먹고 자란 청년인데 어떤 요리 대회에 참가한다. 과제는 두부를 주재료로 한 서양 코스요리 만들기. 설정부터가 창의성을 억지로라도 끌어내도록 되어 있다. 두부란 한국인의 밥상엔 너무나 익숙한 식재료인 반면, 서양의 마트에선 일부 아시아 섹션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는 생소한 것이어서, 흔한 조합이 아니다.

이 상황은 당신에게 ‘있는 것’만 가지고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브리콜라주 (Bricolage)를 강요한다.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데, 그 힘은 최소한 세 가지 요소에서 나온다. 우선, 주재료를 변형해 볼 융통성이 필요한데 두부를 다르게 바라보는 안목에서 나온다.

그런 다음, 독창성을 발휘해 낯선 재료와 조합해 보아야 한다. 없던 조합의 아이디어는 한두개에서 멈추면 안된다. 머릿속에서라도 수없이 조합해 보고 될 법한 하나를 실현해 보는 끈질김과 유창성이 필요하다. 물론, 대회가 아니라면 최고의 레시피를 찾을 때까지 실제로 가능한 모든 조합으로 만들어보고, 실패한 요리를 끊임없이 먹어보거나 엄마의 등짝스매싱을 맞고 버틸 맷집, 회복탄력성도 필요할지 모른다.

창의성도 축적된 장기기억 있어야 가능

이제, 융통성과 독창성 유창성만 있으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쉽지 않은가? 여전히 뜬구름 잡는 비법이라고?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전략’을 써보자. 사실, 이것은 몇년 전 유명한 해외 요리학교와 최근 요리 프로그램의 주제와 유사하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셰프 에드워드 리의 두부요리 시리즈를 방송 내용을 토대로 그의 사고 흐름을 재구성해 보자.

“두부의 특징은 말랑말랑하지.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생긴 겔 구조 덕분이야. 겉은 형태를 유지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탄성이 있어. 이런 질감을 가진 서양 요리는 뭐가 있을까? 그래, 크렘 브륄레! 어떤 재료를 보태면 될까?”

“두부는 손으로도 쉽게 모양을 바꿀 수 있어. 하지만 새로운 형태를 유지하려면 단단해져야 해. 튀기면 되겠지! 단백질이 열에 변성되면서 겉은 단단해지고 속은 촉촉하게 남아.” 무궁무진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가져와 결합했다.

“두부는 내부에 미세한 틈이 많아서 흡수성이 높지. 간장 대신 연기를 흡수시켜볼까? 두부를 훈제하면 어떤 맛이 날까?” “천장까지 쌓인 두부판, 지긋지긋 해… 아, 저렇게 쌓여있는 걸 네덜란드에서 본 적이 있지. 두부를 각각 보지 말고 치즈처럼 한 덩어리로 보는 거야. 치즈를 파내듯 두부 덩어리를 파서 파스타를 담아보자.”

좀더 쉬워졌는가? 이는 초보자 교육에 자주 사용되는 전략인 사고구술기법(think-aloud)이다. 교육자라면 학생들에게, 직장인이라면 팀원들에게 이렇게 접근해 타인의 창의성도 키워볼 수 있다.

이렇게 거꾸로 살펴본 셰프의 창의성은 단순한 기발함이 아니다. 주어진 재료의 특징을 세분화하고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탐색하며, 그에 어울릴 다른 재료를 자신의 경험에서 끌어내 조합했다. 두부의 물성, 튀김의 원리, 서양 요리의 맥락, 향료의 작동 방식 등 미리 공부하거나 실제 겪어본 것들이 장기기억 속에 스키마로 자리잡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요리의 순간, 저장되었던 정보를 작업기억 위로 신속히 불러와 융통성 독창성 유창성을 발휘해 창의적 요리로 현실화했다.

저장된 지식을 활용하는 경험이 중요

자, 여기서 ‘두부’를 변수 x라고 하자. 당신이 현재 처한 과제나 문제, 제약조건을 x에 대입하고 위에서 설명한 요소와 전략을 잘 버무려 상수와 다른 변수를 넣어 당신의 창의성 f(x)의 값을 찾아보자. 충분한 지식의 축적과 반복적 연습, 실패와 시행착오, 몰입 등 수능 준비를 포함한 지식 중심의 학습을 무조건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그 지식을 저장하는 암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 활용하고 전환하는 경험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의 창의성 f(x)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박영민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