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소고기값, 트럼프 물가 최대 난제
아르헨산 수입 확대 놓고 축산업계 반발
물가 안정 vs 농가 보호 충돌 속 딜레마
미국의 생활비 부담이 유권자들의 최대 불만으로 떠오르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물가 안정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고기값 급등은 미국 가계가 체감하는 대표적 비용 압박으로 부각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1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다진 소고기 평균 가격은 8월 파운드당 6.32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스테이크 가격도 파운드당 12.22달러로 1년 새 11% 올랐다.
가격 급등의 배경은 공급난이다. 서부·남부 지역의 반복된 가뭄, 사료비 상승, 질병 확산 등으로 많은 목장이 가축을 조기 처분하면서 미국 전체 소 사육 규모는 1950년대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축소됐다. 멕시코에서 살아있는 소(생우)를 들여오는 국경 통로도 기생충 발견 이후 사실상 봉쇄돼 공급 병목이 심해졌다고 FT는 전했다.
소고기 시장의 불균형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영국에서도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영국의 소고기값은 1년 새 25% 가까이 상승했다. 고단백 식단 확산, 체중감량 약물 사용 증가 등 수요 요인도 가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부담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아르헨티나산 소고기 수입을 확대해 가격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아르헨티나산 연간 수입할당량을 기존 2만톤에서 8만톤으로 늘리는 조치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지지층의 핵심을 이루는 축산업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위스콘신에서 텍사스 롱혼 품종을 사육하는 코트니 파이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육업자들이 배신당했다고 느낀다”며 “소고기 수입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미국 우선주의’는 어디로 갔느냐”고 비판했다. 전미축산업협회(NCBA)도 “이번 계획은 미국 축산업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소비자 가격 인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사육업자들도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언급하자 선물시장에서 생우·비육우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 변동성도 커졌다. 네브래스카의 매덕스 캐틀 컴퍼니 대표 존 매덕스는 FT에 “대통령의 발언 한 번에 수십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축산업계를 달래기 위한 별도 대책도 검토하고 있지만, 물가 안정과 농가 보호라는 두 목표가 충돌하며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룩 롤린스 미 농무장관은 FT에 “미국인의 식탁 부담을 낮추는 것이 최우선 과제지만 국내 식량 공급망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보도에서 행정부가 소고기 관세 인하 외에도 커피·과일 등 생활밀착 품목의 관세를 낮추고 주거비·처방약 등 다양한 비용 인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대부분의 물가 요소가 시장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소고기값 급등은 트럼프 행정부가 직면한 물가정책의 대표적 난제로 꼽힌다. FT는 “소비자는 생산자보다 훨씬 많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가격 안정을 위해 소비자 대응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물가 논쟁의 향방은 소고기값 인하를 요구하는 소비자와 수입 확대에 반발하는 축산업계라는 두 집단의 이해가 어디에서 접점을 찾느냐에 달려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