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통상협상 결과, 국회 비준동의 이어 예산심사도 우회

2025-11-18 13:00:02 게재

합의 내용 반영한 수정예산안 제출 안 해 ‘상임위 심사’ 불가

기재위, ‘필요 없어졌다’면서 대출·보증 예산, 예비비로 전환

산업위 “사업계획·내용 미비 … 내년 추경예산에 편성” 주문

여당 “대미투자특별법 이달 발의, 200일 소요 패스트트랙 추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소위원회 시작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에서 한병도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한미통상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거부한 정부와 여당이 국회 예산심사도 건너 뛸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예산조정소위가 시작했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통상 합의 내용이 반영된 예산안을 수정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은 통상협상 내용을 담은 대미투자특별법을 이달 말에나 내놓는 등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상 12월 2일까지 통과시켜야 하는 2026년도 예산안의 ‘통상 관련 예산’이 제대로 심사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18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전날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부대의견을 통해 “기획재정부는 대미투자 이행을 위해 별도 기금의 신설이 필요하므로 관련 법률안이 조속히 발의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해당 법률안을 심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예산총칙상 목적예비비의 용도에 ‘대미투자 이행을 위한 소요 경비(7000억원)’를 명시하고 해당 금액 7000억원은 대미투자와 관련된 법률안이 시행된 이후 대미투자 이행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한다”고 못 박았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 내용 미비” =국회 기획재정위 전문위원실은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한미 관세협상이 최근 타결되고 수출입은행이 직접 투자하는 방안이 아닌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여 투자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감액할 필요가 있다”며 “수출입은행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신설되는 기금이 대미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경우에는 수출입은행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여 대출·보증 등을 지원하는 것을 전제로 편성된 7000억원의 출자금은 전액 감액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기재위원들은 ‘전액 삭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금의 설치 근거가 되는 법률안 등이 제·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사업의 예산안으로 편성하기 부적절하다”며 이를 목적예비비로 전환, 편성했다. ‘필요 없는’ 수출입은행의 대출이나 보증 재원 7000억원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구체적 심사 없이 예비비로 옮겨놓은 셈이다.

산업위에서는 무역보험기금 출연을 위한 대미투자지원 예산 5700억원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사업계획 및 내용이 미비하므로 1000억원을 감액”하고는 “MOU 체결 및 구체적인 사업계획 수립 후 내년도 제1차 추경예산에 적정 규모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부대의견에 포함시켰다. ‘통상 대응 예산’을 기약 없는 ‘내년 추경’에 넘기며 사실상 심사 없이 상임위 관문을 통과시킨 것으로 보인다.

◆내년 원포인트 추경 예고 = 정부와 여당은 대미투자특별법 제정안을 신중하게 내놓을 예정이다. 관세율 인하를 위해서는 이달 중 법안을 내야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번 달 안에 대미투자특별법을 제출하기만 하면 관세 인하혜택을 받기 때문에 꼼꼼하게 법을 만들어서 이달 중에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기재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 임이자 의원인만큼 법 통과가 쉽지 않다고 보고 발의하자마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울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패스트트랙에 태우면 180~200일 정도 안에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내년 6월에는 법안을 실행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예산 투입에 대한 논란이 크지 않은 상황이지만 법안 제출과 함께 법률안 심사 이외에 종합적 국내 산업 영향평가, 재정투입 규모와 효과 등 다양한 분석과 함께 예산 투입의 적정성까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경우엔 ‘원포인트 추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국회 심사를 전혀 거치지 않은 사업에 대규모 재정이 들어가게 된다면 추경이 불가피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대미투자특별법은 ‘제정법’으로 공청회 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국회 예산정책처는 ‘비용추계’를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비준동의에 가까운 심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6년도 예산안 분석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지난 10월 29일 양국 간 합의 결과에 따라 대미투자 펀드를 위해 기금을 신설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므로 향후 국회에서 제정될 기금의 목적과 재원, 용도 등을 고려하여 국회 예산안 심사 시 2026년 대미투자 예산안에 대한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미 투자 관련 정책금융 패키지의 구체적인 내용, 시기 및 보증·펀드 조성 목표액 등이 구체화될 필요가 있으므로 조속히 이를 마련해 국회 예산안 심사 시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 규모는 향후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양국 간 양해각서 또는 협정 체결 시 관련 법령에 따라 통상조약 체결 절차 및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같은 국회 예산 싱크탱크의 의견은 대미투자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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