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탈세계화와 영어 거품 빼기

2025-11-19 13:00:03 게재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성과는 미국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던 사고방식이 무너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금 3500억달러를 선불로 내라고 윽박지르는 트럼프를 상대로 밀당을 해서 2000억달러, 10년 할부로 깎은 이재명정부는 골치 아픈 각종 국내 정치 현안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게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 세계질서를 규정해 온 세계화라는 말이 용도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본래 세계화라는 말은 시장개방을 비롯해 각종 국가 간의 장벽을 낮추고 사람 재화 문화 지식의 이동이 자유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뜻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탈냉전 시대를 맞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세계질서를 관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또한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미국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강대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은 사실상 없었다. 세계화론자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도전도 보지 못했다.

탈세계화 위해선 과잉 영어교육 성찰부터

트럼프정부는 미국이 세계화를 감당할 수 없으니 자국 이익부터 챙길 것이고 국제 분업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저임금 지역으로 유출되고 있으니 관세장벽을 높이겠다며 실천에 나섰다.

한미관계도 더 이상 혈맹이라는 말로 통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보호 서비스를 받은 만큼 현금으로 지불하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즉 한국도 미국과 일심동체가 아니라 양자를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고 정중하게 타인으로 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탈세계화 시대가 왔으니 오랫동안 세계화라는 마법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세계화가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언어 생활에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초등학교 영어교육이다. 초중고교에서도 조기 유학이 성행했다. 고소득층은 대학등록금보다 비싼 비용을 받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냈다. 수능 시험일에는 영어 듣기 평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비행기 운항도 통제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의 영어 독해력 수준이 옛날보다 향상된 것 같지 않다고 불만이다. 탈세계화를 하려면 과잉 영어 교육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이다. 국어 실력과 연계되지 않은 영어 구사 능력은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다. 기업에서도 미국에서 학부 과정을 이수해 영어는 잘하지만 정확한 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원을 더이상 선호하지 않는다.

대학도 영어 광풍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교육부는 영어 강의가 많은 대학을 높게 평가했다. 학생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는 시수를 두배로 인정했다. 즉, 한 과목을 강의했지만 두과목을 강의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교수가 영어 논문을 영어권 학술지에 게재하면 한국어 논문을 국내 학술지에 게재한 것보다 두배 이상의 평가 점수와 인센티브를 받았다.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려면 외국인 편집자가 선호하는 주제와 내용을 선택해야 한다. 심지어 신임교수를 채용하면서 영어로 면접하는 사례도 있다.

영어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원자가 취직에 유리하도록 운동장은 기울어지고 국내 대학원은 공동화되어 간다. 외국 유학한 박사가 워낙 많으므로 아직 교수의 질적 문제는 드러나지 않지만 유능한 학부 졸업생은 국내 대학원을 기피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예산만 증액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독자적으로 지식 생산하고 축적하는 체제로

이재명정부는 교육개혁을 중요 개혁과제로 선정하고 서울대를 10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어차피 미국 비자를 받기도 어렵게 된 세상이므로 대학에 낀 영어 거품부터 걷어내고 실질적인 교육과 연구의 내용을 존중하도록 문화를 바꾸는 것이 진짜 개혁이다.

국가가 탈세계화 시대에 적응해 경쟁력을 발휘하며 생존하려면 독자적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축적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서울대를 포함한 대학과 연구개발 조직에 대한 정직한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종구 성공회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