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서 불과 6주 만에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금리인하 지연 우려와 기술주 고평가 논란이 겹치며 투자자들이 투기적 자산에서 대거 이탈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FT는 시가총액 기준 1만8000여개 코인 전체 가치가 10월 6일 정점 대비 25% 급락하며 약 1조2000억달러가 증발했다고 전했다. 대표 코인인 비트코인은 같은 기간 28% 떨어져 8만9500달러까지 밀려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누적 수익률도 사실상 0%가 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단기 국채 금리가 높게 유지된 점이 암호화폐 투자심리를 약화시켰다. FT는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붐으로 불어난 고평가 우려까지 겹치며 위험자산 전반이 흔들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10월 10일 발생한 대규모 청산이 시장 전반의 급락을 촉발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규모(massive)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자 레버리지 기반 포지션 200억달러가 순식간에 강제 청산되며 코인베이스 등이 집계한 역대 최대 단일일 낙폭이 발생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날을 ‘10/10’이라 부르며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캔터피츠제럴드의 암호화폐 애널리스트 브렛 크노블라우흐는 “제도권 수용과 규제환경 개선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상승분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비트와이즈의 리서치 책임자 라이언 라스무센도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레버리지를 좋아한다”며 “매번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하다 과도한 위험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대형 코인도 줄줄이 추락했다.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개 가운데 시바이누·수이·아발란체 등 6개 코인은 올해 60%가량 급락했다.

암호화폐 급락은 미국 증시 일부 부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FT는 골드만삭스의 비수익 기술주 지수가 10월 중순 이후 19% 하락했다며, 밴다리서치의 비라즈 파텔 부대표는 “10월 중순부터 미국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뚜렷하게 둔화했다”고 말했다. 대신 방어형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조정이 단기 충격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CEA 인더스트리스의 데이비드 남다르는 “지금의 하락은 시장 붕괴가 아니라 10월 청산의 ‘긴 여파’”라며 “포지션 규모가 커지고 레버리지가 깊어진 만큼 되돌림에는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