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나르시시즘 정치의 함정

2025-11-21 13:00:01 게재

#1.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깊은 협곡에서 독도법을 익히던 스위스 병사들이 폭설로 길을 잃었다. 병사들은 며칠을 헤맸다. 식량은 바닥났고 죽음이 몰려왔다. 그때 한 병사가 배낭에서 지도를 발견했다. 그 지도를 본 병사들은 마을 방향으로 무작정 걷고 걸었다. 지도를 희망 삼은 병사들은 목숨을 건졌다. 구조대는 깜짝 놀랐다. 병사들이 생명줄로 삼은 지도는 알프스산맥 아닌 스페인의 피레네산맥 지도였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밝힌 실화(實話)다. 대니얼 교수는 “신중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고민만 하다 때를 놓치는 ‘결정장애’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나라의 국정 운영도 마찬가지다. 좌고우면(左顧右眄)만 하면 나라를 망친다.

#2. 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출중한 외모를 가진 미소년이다. 어느날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괴로워하던 미소년은 물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다.

미소년의 그 강렬했던 자기애를 ‘나르키소스 효과’라고도 한다. 나르키소스 효과는 ‘아첨꾼의 거울’ 또는 ‘유혹자의 거울’이라고도 부른다. 독일의 정신 의학자 네케는 1899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말을 만든다.

제 모습에 반하는 ‘유혹자의 거울’ 경계를

국정을 이끄는 이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일하면서도, 멋진 행정이라고 자찬하는 건 ‘망상의 나르시시즘’이다. 복지부동보다야 낫지만 나르시시즘은 부작용이 크다. 논란이 분분한 부동산 정책이 그렇다. 집값 잡겠다는 정책이 집 없는 이들을 아프게 한다. 대장동 항소 포기 역시 찜찜하다. 진위야 어찌됐든 절차에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나랏일은 어렵다.

리더가 정책을 잘 펼치려면 사람을 잘 써야 한다. 인사(人事)다. 리더는 만능이 아니다. 부족한 면이 있다. 그 부족함을 인사로 보완하는 게 능력이다. ‘전쟁터에서 어느 장수를 선봉에 세워 적의 기선을 꺾을 것인가’라는 책략은 중요하다. 실력은 별로인데 아부꾼에게 공 세울 기회를 주겠다고 선봉에 세웠다가 패배하면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인사의 원칙은 능력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국무위원 발탁 기준도, 민간기업의 임원 선임 기준도, 자치단체장의 간부 임용 기준도 능력이어야 한다. 능력에는 품성과 리더십도 포함된다. 전문성 있고 품성 올곧고 솔선하는 인물이 적임자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조직 구성원이 하는 것이다. 리더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조직의 윤활유여야 한다.

이재명정부는 여러 인사를 진행 중이다. 내각 퍼즐은 다소 늦게 맞춰졌다. 그럼에도 ‘능력 장관’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이 장관 이름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미약하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The Prince)’에서 “최악의 리더는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지만 국민이 원하는 건 결정장애 장관도, 나르시시즘 장관도 아니다. 결단할 때 결단하고, 할 말 할 때 하고, 뚝심 있게 지도력을 발휘하는 장관을 원한다. 장관 자리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저 대통령 의중대로 짝짜꿍만 하는 장관은 결정 장애보다 더 최악이다.

공직사회 인사 ‘능력의 거울’이 원칙이어야

정부는 고위직 공무원, 공공 기관장, 군 장성, 검찰 간부 등의 인사를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이다. 2026년 새해에 새 예산으로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국정의 실력을 발휘하려면 ‘참 인사’가 절실하다. 그런데 일을 해야 할 공직사회는 뒤숭숭하다. ‘내란 관여 인사 색출령’에 공무원이 납작 엎드렸다. 총리실·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외교부·국방부·검찰·경찰 등 정부가 밝힌 12개 집중점검 기관은 더 그렇다.

검찰은 ‘대장동 항소 포기’ 이후 인사가 요동치고, 육·해·공군은 3성 장군의 2/3가 물갈이됐다. 일부에서는 투서와 밀고도 있다고 한다.

‘성향’ 중심 인사는 일종의 나르시시즘 정치다. 아부의 거울만 보면 안된다. 능력의 거울을 봐야 한다. 인사의 철칙이다. 스위스 병사는 엉뚱한 지도로 목숨을 구했지만, 엉뚱한 나르시시즘 행정은 국가를 망친다. 곳곳에 “어떻게 이런 인물이~”라는 인사가 적지 않다.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