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상명하복에서 ‘작업자 오너십’ 강화로
한국경제가 진퇴양난의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한국경제 미래와 관련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반도체와 조선을 포함, 10대 주력산업 모두 5년 뒤에는 생산성과 경쟁력에서 중국에 뒤처질 것으로 내다봤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 모두에서 중국이 앞서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한국 기업 성공의 보장수표였던 추격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유일한 길은 시장진화의 선두자리를 꿰차는 ‘추월전략’ 뿐이다. 고객맞춤형 생산의 일반화가 그 해답이다. 이를 뒷받침할 필수 혁신 과제가 있다.
시장은 분명하게도 저마다 특색있는 요구를 제시하고 그마저 수시로 변화하는 고객맞춤형 생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듯이 사람의 역할을 기계로 대체하는 기계 중심 자동화는 기계적 동작의 반복으로 변화무쌍한 시장 수요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대안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과감하게 기계에 맡기고 사람은 한층 창조적 역할에 집중하면서 이 둘의 조화와 협업을 추구하는 사람 중심 자동화이다.
SK하이닉스가 삼성 따라잡은 비결은
사람 중심 자동화에서 생산성을 좌우하는 요소는 사람의 창조적 역할이다. 바로 여기서 작업자 오너십이 강력히 요구된다. 시장 수요가 무한히 다양해지고 수시로 바뀌는 조건에서 톱다운 의사결정은 시장 동향과 괴리되기 쉽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장이 결단하는 식으로 사실상 HBM 추가 개발을 포기한 바 있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삼성반도체를 정체 늪에 빠트리는 치명적 잘못임이 드러났다.
시장 수요가 무한히 다양해지고 수시로 바뀌는 조건에서 고객의 요구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 대응할 수 있는 주체는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작업자들이다. 이 점은 개별 기업의 폐쇄적 결정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함께 해답을 만들어가는 생태계 경제에서는 더욱 명확해진다. 작업자들이 의사결정과 생산활동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는 작업자 오너십을 강화할 때 경영 효율성과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경제에서 벌어진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SK하이닉스가 삼성을 따라잡은 점을 들 수 있다. 요즘 삼성 직원들 사이에서 ‘삼무원’이라는 용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삼성 공무원’의 약자다. 삼성은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업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롤 모델로 통했다. 정교한 시스템으로 뒷받침된 톱다운 상명하복 문화는 과거 삼성의 고속질주를 가능하게 했으나 이제는 낡은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SK하이닉스는 정반대의 바텀업 기업 문화를 선보였다.
결정적 모티브는 HBM 지속 개발 결정 과정에서 마련되었다. 해당 결정은 당시의 회의적인 시장 분위기, 1등 기업 삼성의 포기 결정, 모험이 쉽지 않은 취약한 재무구조 등을 고려할 때 지극히 난해한 과제였다. SK하이닉스는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발언하는 ‘스피크업’을 통해 해결했다.
토론을 주도한 사람들은 일선 기술자들이었다. 토론은 기술은 자신이 있는 만큼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보자는 쪽으로 흘렀다. 최고경영진은 직원들의 의사를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회사에 대한 높은 신뢰와 함께 자신들이 주도한 결정에 대한 무한 책임감을 품게 되었다. 전사적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확인하면서 소통과 협업도 한층 고도화되었다.
경영진은 1 대 1미팅을 정례화하는 원온온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바텀업 기업 문화를 안착시켜 나갔다. 핵심기조는 작업자 각자가 자기 업무의 주인공임을 깨닫고 역할을 높여 가는 작업자 오너십 강화였다. 결과는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시장 질주로 나타났다.
4차산업혁명 시대 생산성 몰입 정도에 좌우
4차산업혁명 시대 생산성은 몰입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세계 평균 몰입 비율은 23%였다. 한국은 그 절반 정도인 12%에 불과했다. 한국 기업이 어느 지점에서 경영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작업자 오너십 강화는 그를 위한 나침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