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와 북·중·러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
동북아의 지도가 조용히 뒤틀리고 있다. 이제 판을 움직이는 것은 ‘거리’와 ‘속도’, 그리고 ‘정밀성’이다.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Long-range precision steike)는 자국 영토 밖 수백~수천km 거리의 표적을 짧은 시간에 높은 정확도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재래식 또는 핵 탑재 타격체계다. 즉, ‘멀리·정확히·빨리’ 타격하는 무기이며, 단순히 ‘타격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작전수단’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구조를 재편하는 냉정한 기술적 요인으로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정밀타격 무기는 이제 ‘전술’이 아니라 ‘지정학’이다. 그것은 전략적 메시지이자 위기관리의 언어이며 전쟁의 문턱을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이다.
오늘 동북아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된다. 정밀타격 경쟁이 가속될수록, 북·중·러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Area Denial 적이 분쟁지역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진입하더라도 특정지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방해)’는 더욱 촘촘하고 전략적으로 결속한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한국·일본·호주·필리핀)의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동맹국들은 이를 북한 억제, 지역안정 확보, 전략적 자율성 강화라는 명분 아래 적극 추진한다.
정밀타격 무기에 대한 미중의 다른 시각
그러나 중국에게 이 현상은 전혀 다른 신호로 읽힌다. 중국은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말을 핵전력 생존성, 지역 군사력 균형, 정치적 영향력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중국 주변에 배치하고 한국과 일본이 보유한 정밀타격 무기는 중국의 핵 전력을 선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기반으로 보인다.
특히 극초음속 무기(HGV, HCM)나 장거리 순항·탄도미사일 등은 중국의 A2/AD 구조를 열어젖히는 수단들이다. 중국의 전략적 계산법에서 ‘동맹국의 재래식 타격 능력 = 미국의 핵·전략 패키지의 전진 배치’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불안정성의 첫번째 층위다.
정밀타격 무기가 증강될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중·러의 A2/AD는 더욱 강화된다. 문제는 북·중·러의 A2/AD가 독립된 3개의 방공거품(air-denial bubbles)이 아니라, 이미 지정학적으로 겹쳐 잠재적 하나의 거대한 벨트(anti-access belt)처럼 작동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장거리 미사일·해군력·방공망으로 광역 A2/AD를 구축했고, 러시아는 극동·북방에서 미국 접근을 견제하는 전략적 압박을 가하며, 북한은 장사정포·단중거리 미사일·지하시설로 전구급 A2/AD를 구축하고 있다. 동북아는 사실상 ‘3층구조의 접근거부 지대’가 되어 가고 있다. 상층은 중국의 광역 장거리, 중층은 러시아 극동의 전략적 견제, 하층은 북한의 전구·전술 A2/AD다. 정밀타격 무기 경쟁은 이 3층 구조를 더욱 강화하며, 북·중·러는 ‘전략적 편대’를 이루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효과가 만들어진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정밀타격 능력과 3축체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변화가 주변 대국들의 전략 계산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의 동북아는 이미 정밀타격 경쟁 → A2/AD 강화 → 핵·재래식 얽힘이라는 복합구조로 움직이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피중개국’이나 ‘수동적 방어국’의 위치로 머물 수 없다. 한국은 이제 스스로의 ‘전략적 안정성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그 모델은 최소한 장거리 타격 억지력의 전략적 활용, 북·중·러 A2/AD에 대한 위기관리 메커니즘, 한미 확장억지의 통합적 재구성,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 확보 등을 포함해야 한다.
한국 스스로 ‘전략적 안정성 모델’ 설계해야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 더 멀리 보아야 할 한국 정밀타격이 시간축을 압축하는 시대, 전략은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바라보아야 한다. 북·중·러의 A2/AD는 기술이 만든 우연한 결합이자, 동북아 질서를 재편하는 거대한 구조적 압력이다. 한국은 이 구조의 변화를 관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전략적 자리를 새로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장거리 정밀타격 경쟁이 뒤흔드는 새로운 인도태평양 시대에 한국이 설 자리를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