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크라 제네바 협상, 정치적 밀당의 서막

2025-11-25 13:00:20 게재

평화안 도출은 내부 정치용

러시아는 신중하게 관망 중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은 형식적으로는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직은 출발선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28개 조항의 종전안 초안을 대폭 수정해 19개 조항으로 압축한 새 평화안을 마련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실행 가능한 문서’라고 평가하지만 결정적 사안은 정상 간 판단에 맡긴 상태다. 합의보다는 충돌을 미룬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이견은 단지 몇 개에 불과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도출에 희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전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노력에 감사하지 않으며,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미측 협상 참가자들은 “매우 생산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와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는 우크라이나 측과 함께 기존 종전안의 조항들을 ‘정교하게 조율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협상 결과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극히 민감한 사안을 포함하는 데 성공했다”며 대표적인 성과로 ‘전원 포로 교환’과 ‘납치된 아동의 귀환’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크림반도 플랫폼 정상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의회의 루슬란 스테판추크 의장은 “러시아의 점령 영토를 인정하거나 병력 규모를 제한하는 조항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명확한 ‘레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트럼프 측이 초기 종전안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요구했던 주요 내용과 정면 충돌하는 대목이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평화안 내용보다 그 초안이 만들어진 ‘과정’과 ‘의도’에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민감한 조항에 대한 주요 결정을 트럼프와 젤렌스키 두 정상 협의로 넘겼다. 타협의 여지라기보다 내부 정치적 부담을 미루는 방식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은 국내 정치적으로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자국민 희생과 유럽의 피로 누적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번 협상은 그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외교적 성과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크렘린궁은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평화안 초안을 전달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평화안 중 일부는 수용 가능하다”며 향후 논의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 뒀다.

러시아 외교정책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미국이 직접 협상하자고 접촉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 측의 역제안에 대해서는 “완전히 비건설적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는 러시아가 여전히 협상 주도권을 미국과의 직접 협상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번 제네바 협상은 ‘평화 프레임워크’라는 틀을 만들긴 했지만 그것이 곧 종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국의 정치적 셈법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예비 교섭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특히 본질적 쟁점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 NATO 가입 보장, 러시아의 법적 책임 등은 쉽게 접점을 찾기 어렵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 초안을 바탕으로 각국 정상에게 보고한 뒤 향후 협상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젤렌스키 측은 오히려 “직접 충돌로 인해 그간의 진전이 되돌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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