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채권 위기, 일본에서 시작되나

2025-11-26 13:00:04 게재

국채금리·엔저 동반 불안

해외자금 이동 우려

일본발 채권시장 불안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뉴스레터(Markets A.M.)에서 최근 일본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이 “3년 전 영국 리즈 트러스 전 총리 당시의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하며 시장의 경계를 촉구했다.

새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1350억달러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확정한 이후, 일본 국채금리는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고 엔화 가치는 다시 수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미 GDP의 약250%에 이르는 정부 부채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재정 지출 확대가 부채 부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WSJ는 일본 금융시장을 “독자적인 사이클이 반복되는 곳”이라고 표현하며, 그동안 일본의 극단적인 금융실험이 국제적 충격으로 번지지 않았던 전례를 상기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본 가계가 보유한 해외 금융자산이 막대한 데다, 이 가운데 약1조달러가 미 국채에 투자돼 있어 일본 금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글로벌 자금 흐름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국채금리가 더 오르면 일본 가계자금이 자국 채권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미 국채 매도 압력이 커져 미국 금리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

일본 내부에서도 정책 사이의 엇박자가 지적된다. 일본은행(BOJ)은 초완화 정책을 서서히 거둬들이고 있으나 신중한 접근이 오히려 물가 상승과 엔저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BOJ는 장기간 국채매입을 이어오며 금리 상승을 통제해왔지만, 엔저가 심화되자 일본 정부는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추경을 편성했고 이는 다시 국채 발행 확대와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정 확대와 통화정책 정상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금리와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일본발 불안은 아시아 외환시장에도 즉각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다.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한국 원화와 대만 달러 등 아시아 통화도 함께 압박을 받는다. 여기에 최근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시 고조되면서 지역 위험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대만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중국과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며, 미국 의회가 대만 지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재정 불안까지 더해지면 아시아 시장 전반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계가 나온다.

유럽 일부 국가들도 일본발 충격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WSJ는 일본에서 문제가 터질 경우 “재정 기반이 약한 영국과 프랑스도 흔들릴 수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과도한 재정적자로 EU 경고를 받은 상태이고,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성장 정체와 높은 차입 비용에 시달리고 있어 외부 충격에 민감한 구조다. 최근 글로벌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일본 국채금리 상승은 세계 채권시장의 ‘약한 고리’를 다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WSJ는 일본이 당장 금융위기로 직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일본 가계의 높은 저축 규모와 국내 투자자의 국채 소화 능력은 여전히 견조하다. 하지만 시장은 일본의 재정·통화정책 체계에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물가 안정과 엔화 방어를 위해 금리를 더 올릴 경우 정부의 부채 부담은 크게 늘고, 반대로 재정 지출을 축소하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딜레마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WSJ는 이번 상황을 두고 “재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책은 결국 비용을 치르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유지돼온 일본의 저금리·대규모 국채 발행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는 일본을 넘어 글로벌 채권시장 전반의 위험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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