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시진핑의 ‘역사적 사명’과 대만해협 뇌관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최근 대만 유사시 일본의 군사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언급한 이후 대만문제가 다시 국제정치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중국은 대만문제를 위해 전쟁을 불사할 것인가. 2019년 중국의 국방백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암시한다. 인민해방군의 역사적 사명을 재정의하며 군사력을 단순한 억지수단이 아닌 당이 설정한 전략목표를 관철하는 적극적 도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국방백서가 제시한 네가지 사명 중 핵심은 국가주권과 영토보전, 그리고 통일을 수호하는 것이다. 인민해방군 매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 통일·영토·주권과 직결된 중대한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이를 ‘확실하게 통제’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외부에서 제기된 “중국이 필요할 경우 전쟁을 개시할 수 있다”는 우려와 맞물려 더욱 큰 파장을 낳았다.
역사적 사명의 재강조는 대만문제와 맞물리며 동북아 안보지형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2024년 라이칭더의 당선은 위기를 한층 가중시켰다. 대만 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진당이 세차례 연속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대만 독립 성향의 유권자 지지를 받는 민진당 후보의 승리는 중국 입장에서는 평화적 통일 전망이 더욱 멀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라이칭더의 취임식과 10월 10일 국경일 연설은 대만해협의 긴장을 다시 고조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연설에서 대만을 9차례나 ‘중화민국’으로 지칭하면서 하나의 중국을 전제로 하는 1992년 합의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나아가 대만은 대만과 그 주변 섬에 뿌리를 둔 공동체이며 대만인은 중국인이 아니며 대만문제는 중국의 국내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대만을 중국과 동등한 국제적 지위를 가진 존재로 규정하는 화법이며 베이징의 눈에는 명백한 두개 국가론으로 비쳤다.
대만 국내정치가 군사충돌 개연성 높여
예상대로 라이칭더의 연설은 중국의 강경한 대응을 촉발했다.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사령부는 5월에 진먼·마쭈열도와 대만본토에 육군·해군·공군·로켓군을 총동원해 두차례의 합동검(2024A·2024B)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과거의 무력시위와는 다른 뉴노멀의 출현을 예고했다. 2022년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초래한 군사훈련이 주로 경고의 성격을 띠었다면 이 훈련은 대만을 향한 봉쇄와 정밀타격 시나리오를 노골적으로 연습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위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대규모 군사훈련은 해외 투자와 대만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높일 뿐 아니라 대만 사회에 상당한 심리적 위축을 가져온다. 중국이 미국의 개입을 개의치 않고 필요하다면 대만을 ‘자기 뜻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만 주민들에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은 군사적 압박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제재 조치도 병행했다. 2010년 체결된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지렛대로 사용해 2024년 5월 31일에는 ECFA 적용 품목 가운데 134개 제품에 대한 관세우대 조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대만 미국의 작용과 반작용이 초래하는 군사적 충돌 개연성의 가장 중대한 요인은 대만의 국내 정치 변수다. 라이칭더의 득표율은 약 40%에 그쳤고 입법원에서는 국민당이 52석으로 민진당(51석)을 1석 앞선다. 이 구도에서는 대만독립을 명시한 헌법 개정이나 국민투표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까지 반복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민진당의 세력확장을 일정 부분 제어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향후 권력구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민진당의 장기집권이 이어질수록 중국 내부에서는 “평화적 통일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커지며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다.
게다가 시진핑의 장기집권과 특별한 지위 부여는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정치적 업적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만통일이 될 수도 있다.
미중 양국과 대만에게도 역사적 분기점
국제정치사는 부상하는 강대국이 시도한 세력균형 전쟁과 기존 패권국가가 선택한 예방전쟁의 사례로 가득 차 있다. 21세기 미중 전략경쟁이 좁은 대만해협을 무대로 힘의 정치로 비화할 개연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대만의 국내정치 향방과 양안관계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미중경쟁이 전쟁으로 치닫느냐, 아니면 장기적인 긴장관리의 궤도로 머무느냐가 갈릴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은 미중 양국과 대만 모두에게 위기관리와 신중한 전략적 선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