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터지면 아시아가 먼저 흔들린다

2025-11-27 13:00:03 게재

FT 기고문 “AI 호황의 첫 균열, 한국·대만에서 시작될 것”

인공지능(AI) 열풍이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실제 위험 신호는 미국이 아닌 아시아에서 먼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업·시장 분석 코너 '렉스(Lex)' 칼럼니스트인 준 윤은 26일(현지시간) 기고문에서 “AI 사이클의 균열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AI 공급망의 가장 큰 병목으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최첨단 파운드리 역량이 한국과 대만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전 세계 HBM의 약 80%를 공급하고, 대만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역시 대부분 한국산 HBM에 의존하고 있다. 준 윤은 “SK하이닉스는 최근 모든 HBM 생산량이 2026년 말까지 이미 팔렸고, 수요 대비 공급 부족은 2027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TSMC도 비슷하다. 엔비디아 칩과 HBM을 적층·통합하는 첨단 패키징 공정은 올해 생산 능력의 70% 이상이 엔비디아 몫으로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만 반도체 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은 이런 공급 부족이 만든 호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폭발적 수요’가 오히려 사이클 정점을 알리는 경고음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도체 공급망에서는 부족이 심할 때 고객사들이 실제 필요보다 많은 주문을 넣고, 생산업체는 이를 장기 수요로 오해해 설비투자를 확대한다. 이후 공급이 정상화되면 고객사들은 주문을 축소하거나 연기하며 급격한 조정이 발생한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주문은 성장 지속의 신호가 아니라 피크의 전조일 때가 많다”고 했다.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 증가율이 15%에 그칠 것이라는 IDC 전망도 우려를 키운다. AI 관련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음에도 업계 전체로 번지지 못하고, 공급망 안의 극히 좁은 구간에서만 호황이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준 윤은 위험이 미국 빅테크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메타 등은 AI 인프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지만, 광고·클라우드·생산성 소프트웨어 등으로 수익 구조가 넓어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다. AI 투자를 줄여도 다른 사업으로 무게를 쉽게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대만 반도체 기업은 AI와 고성능컴퓨팅(HPC)이 성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TSMC의 3분기 순매출 중 HPC 비중은 57%에 달했다. 반도체 산업은 고정비 비중이 높아 수요가 조금만 흔들려도 실적에 즉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충격이 훨씬 크게 드러난다.

그는 “AI가 결국 경제를 바꿀 수는 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전통적인 반도체 사이클 위에 있다”며 “앞으로 AI 수요의 실체는 아시아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에서 가장 먼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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