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으로 주주평등원칙 구현”
소액주주 보호 및 약탈적 인수합병 예방
유럽·아시아 주요 국가, 이미 제도 정착
최근 스웨덴 투자회사 EQT가 코스피 상장사 더존비즈온의 지배주주 지분을 27% 프리미엄 가격에 인수하면서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상장사 M&A(인수합병) 때 일반주주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도록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해야 주주평등원칙을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약탈적 인수합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과 아시아 선진국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정착된 제도다.
◆더존비즈온 지배주주 지분 매각에서 드러난 일반주주 권익 침해 =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7일 미국에 상장된 스웨덴 투자회사 EQT가 코스피 상장사인 소프트웨어업체 더존비즈온의 지배주주 지분을 23%와 신한투자증권 지분 14%를 27% 프리미엄 가격에 힌수했다는 공시가 올라왔다.
공시에 따르면 김용우 회장 등 매각 측은 5일 종가 대비 27% 프리미엄을 더한 12만원에 주식 전량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회사 전체의 매각이 아니라 지배주주인 김용우 회장과 신한투자증권 소유 펀드 지분 38%가 지배권(Control)과 함께 거래된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거래는 기업인수, 합병이라 일컫지 않고 지배주주의 사적이익(Private benefit)을 위한 것으로 회사 전체를 매각하는 것과 구분한다.
문제는 공시 당일 주가는 전일 대비 11.3% 폭락 마감하면서 시가 총액은 3220억원 증발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62%에 달하는 지분을 가진 일반주주의 존재 자체가 무시되는 주주권익 피해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거버넌스 포럼은 26일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이 가져올 기업 인수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세미나를 개최해 논란의 쟁점과 효익을 살펴봤다.
◆일반주주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에 주식 매각해야 = 이날 첫 번째 주제 발표를 맡은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교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주주평등원칙을 구현하는 장치이자,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며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전체 주식에 대해 적용되어야 지배주주의 변동이 있을 때 일반주주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상장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을 취득할 경우,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공개매수를 통해 의무적으로 취득하는 제도다. 한국의 경우 1997년 1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적대적 기업인수에 대한 지배권 보호라는 목적으로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시행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인수합병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1998년 2월 말 제도를 폐지했다. 2000년 중반부터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문제가 대두되면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꾸준히 검토해 왔고 금융위원회는 2022년 12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재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반대 측에서는 인수 비용 증가로 인한 M&A 시장 위축 가능성 등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김우찬 교수는 “지배권 프리미엄이 고정돼 있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가정”이라며 “전체 인수비용이 아니라 1주당 인수비용과 인수 후 1주당 주식가치를 비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지배권 프리미엄이 낮아져도 매입해야 하는 주식 수가 증가하면 전체 인수비용은 늘어나지만, 1주당 주식가치가 인수비용보다 높으면 인수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자본시장 신뢰를 회복할 열쇠” = 이어진 발제에서 전종언 마이알파 매니지먼트 한국 대표는 일본과 한국의 제도를 비교하며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도입이 자본시장 신뢰를 회복할 열쇠라고 주장했다. 전 대표는 “기업에 좋은 인수 제안이 왔을 때 독립적인 이사회가 가동되고, 투명한 공개 가운데 주주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일본은 30% 이상 인수 시 모든 주주에게 동일한 가격에 매각 기회를 보장하며, 이를 통해 주가 상승과 경영 투명성을 모두 이뤘다”며 “반면, 한국은 지배주주와 사모펀드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고 일반주주는 늘 배제돼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한샘, 한온시스템 등의 사례를 통해 “같은 회사 주식을 두고 누군가는 20만원에, 다른 이는 4만원에 거래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며 “이런 구조를 방치하는 한 한국 주식시장의 체질 개선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어 이미 뿌리내린 상태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의 지배권을 취득한 인수자가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경우 잔여 주식 전부를 대상으로 일정기간 매수청약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이 같은 공개매수지침(구체적 기준은 각국에 위임)을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를 1972년 처음 도입한 영국은 30% 이상 주식 취득 또는 30% 이상 50% 미만 주식 보유자가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경우 잔여 주식 100%를 매수해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도 일정 규모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기업 지분 1/3을 초과해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해당 거래는 공개매수로 진행해야 하고 2/3를 초과해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 주주 모두에게 매수청약을 해야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유럽 국가들과 유사하게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거나 보유한 주주에 대해 기간 내 추가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 전부를 대상으로 공개매수 청약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제도는 없지만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가 강력하게 작동돼서 제도 도입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경우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지만 소송을 통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크다.
구현주 변호사는 “국내 상장 기업은 집중된 오너십과 강한 대주주 영향력이 크다”며 “상대적으로 소수주주 보호가 약해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필요성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