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급부상했지만 엔비디아 아성은 견고

2025-11-28 13:00:01 게재

구글, 수직계열화 전략이 핵심적 강점

엔비디아, 범용 GPU 영역서 우위 여전

AI 버블 논란으로 기술주가 휘청거린 뒤, 이번엔 구글과 엔비디아의 맞대결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주 구글이 내놓은 제미나이 3.0과 AI 이미지 모델 ‘나노바나나 프로’가 챗GPT와 소라를 압도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구글 주가는 급등세를 탔다.

디지털 시장 분석업체 시밀러웹에 따르면, 구글의 제미나이는 이달 11일(현지시간) 챗GPT의 시장 점유율을 추월했다. 제미나이의 점유율은 불과 며칠 새 23%에서 30%로 급등했다. 구글 AI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제미나이 3.0의 파괴력은 숫자로 증명됐다. 복잡한 추론, 문제 해결, 데이터 분석 등 10여 개 분야에서 오픈AI와 앤트로픽의 AI 모델을 제쳤고, 화학·생물학·물리학·수학 등 과학 지식 영역에서는 GPT-4.1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포브스는 25일 보도했다.

◆TPU, 엔비디아 독점 시장 흔들다= 구글의 약진은 단순히 AI 모델 경쟁을 넘어선다. AI 칩 시장을 독식해온 엔비디아의 아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 중심엔 구글이 자체 개발한 AI 칩 TPU(Tensor Processing Unit)가 있다. 특히 그동안 엔비디아 칩에 의존해왔던 메타가 구글 TPU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25일 전해지면서, 시장의 기대는 현실이 됐고 주가도 반응했다.

구글의 진짜 강점은 AI 수직계열화(Full Stack)에 있다. AI 모델 개발(제미나이), 칩 생산(TPU), 플랫폼을 통한 빅데이터 확보, 자체 데이터센터 운영까지 산업 전 과정을 갖췄다. IT 전문매체 더 인포메이션은 27일 “구글이 모델을 더 싸고 빠르게 개발해 전 세계 방대한 사용자층에게 AI를 확산시키고 수익화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선점했다”고 분석했다.

2013년부터 개발된 TPU는 범용 GPU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엔비디아 GPU가 다양한 계산을 동시에 빠르게 처리하는 ‘마라톤 선수’라면, TPU는 특정 AI 연산에만 집중하는 ‘단거리 스프린터’다. 구글 워크로드에 최적화돼 전력 소모는 적고 효율은 극대화됐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TPU의 가격 경쟁력이다. 엔비디아가 75%에 달하는 높은 마진율을 유지하며 클라우드 기업들의 부담을 키워왔는데, TPU가 이 마진을 대폭 낮춰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구글이 단순 판매를 넘어, 2027년 메타 자체 데이터센터에 직접 설치하는 영업도 예견하고 있어, 엔비디아의 ‘독점 AI 칩 공급 체제’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야후파이낸스는 한 구글 클라우드 경영진의 말을 인용, TPU 채택을 확대하면 엔비디아 연간 매출의 10%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엔비디아의 견고한 성벽, CUDA 생태계 = 위기를 감지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선제 대응에 나섰다. 오픈AI, 앤트로픽, xAI 등 주요 고객사들이 TPU로 눈을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자와 전략적 거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25일 젠슨황이 “우리는 한 세대 앞서 있다”고 밝혔듯이 엔비디아 GB300칩 성능은 TPU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진짜 경쟁력은 하드웨어가 아니다. 바로 CUDA(쿠다) 기반 소프트웨어 생태계다. 개발자들에게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은 CUDA 생태계는 엔비디아 GPU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구글도 XLA 컴파일러 같은 개발자 툴로 CUDA를 추격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TPU 기반 개발자 활동이 두 배로 늘어나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15년 넘게 쌓아온 CUDA X 라이브러리 같은 엔비디아의 깊은 생태계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 세계 연구기관과 기업이 이미 CUDA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만큼, 생태계 전환 비용이 만만치 않다.

26일 주식시장은 엔비디아의 칩 우위를 그대로 반영했다. 엔비디아는 2.4% 반등했고, 알파벳은 3.45% 하락했다. TPU 구현을 담당하는 주요 팹리스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은 12% 급등세를 이어갔고, 경쟁사 AMD는 3.9% 반등에 성공했다.

◆빅테크 자금력이 AI 경쟁의 승부처 = 치열한 AI 경쟁의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는 자금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분기 기준 수십억에서 수백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잉여현금흐름도 대규모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재무 상태가 탄탄하다.

애플은 최근 회계연도에서 약 988억달러의 잉여현금을 기록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도 각각 716억달러, 728억달러의 잉여현금흐름을 확보했다. 메타는 541억달러, 아마존은 382억달러, 엔비디아는 27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들 기업은 모두 막대한 현금흐름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면서도 필요할 때 추가 투자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현금 보유 규모도 상당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약 1020억달러, 알파벳은 985억달러, 아마존은 942억달러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메타·애플·엔비디아도 각각 445억달러, 547억달러, 606억달러를 보유해 단기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재무 완충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AI 인프라 확충이 자본집약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빅테크는 필요한 만큼 투입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같은 AI 투자 경쟁에 나섰어도 오라클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오라클은 최근 회계연도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4억달러로 돌아서면서, AI·클라우드 확장에 필요한 현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어려워 대규모 외부 조달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압박은 오픈AI가 받고 있다. HSBC 분석에 따르면 오픈AI는 2030년까지 클라우드 임차비로 총 7920억달러가 필요하지만, 같은 기간 누적 잉여현금은 약 282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207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비상장 상태에서 자본 조달에 한계가 명확한 만큼, 오픈AI는 장기적인 자본 조달력 확보를 위해 2027년 전후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월가에서 꾸준히 나온다.

◆현금흐름은 견조, 구글의 지구력이 관건 = 결국 빅테크의 현금흐름은 견고하다. 무엇보다 구글은 광고 매출에서 나오는 연간 3850억달러 규모의 강력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AI ‘치킨 게임’을 완주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구글의 저비용·고효율 TPU가 엔비디아 독점 시장의 고비용 및 공급 병목 문제를 완화하고 AI 확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앞으로 펼처질 피지컬 AI와 같이 물리 세계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TPU가 부족한 점이 지적되며 엔비디아 범용 GPU의 필요성을 키운다. 연간 1652억달러 매출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투자가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적 위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주류 시각은 현재 상황을 구글의 완벽한 승리로 판단하기는 시기상조이며, 결국 탄탄한 자금력을 보유한 빅테크 간 장기 경쟁이 AI 생태계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주영·양현승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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