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노동센터, 취약노동자 노동권익 지킴이 기반
임금체불,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산재 등 다양한 현장 문제 … 노무사·변호사 무료 법률대리, 구제업무와 비용지원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은 영세 소규모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종사·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취약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교육 및 법률구조상담 사업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하는 ‘취약노동자 교육 및 법률구조상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지원사업은 임금체불,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산업재해, 야간근로수당 등 다양한 노동현장의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며 실질적 구제를 이끌고 있다.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이에 대한 구체적 지원 사례와 내용을 알아본다.
#. 평범한 직장생활 13년, 남의 일이었던 ‘직장 내 괴롭힘’
평범한 직장인 민 모씨에겐 직장생활 13년 동안 언론에서 가끔 보도되는 ‘직장 내 괴롭힘’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자신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씨는 버티다 못해 몇몇 무료상담처를 찾았다.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선임을 해야 더 알려줄 수 있다”는 식이었다. 주간에는 연차·외출·조퇴를 신청하기 어려워 야간상담이 가능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서울 관악구 노동복지센터에서 만난 공인노무사와 상담하면서 스스로 탓하고 위축됐던 마음에서 벗어나 권리를 기준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첫 상담에서 1년여간의 인신공격과 최근 3개월간 집중된 괴롭힘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상담 노무사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을 구분해줬다.
사실관계와 사건일지 정리, 회의 및 지시사항에 대한 객관적 기록,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고 서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증빙 가능한 자료 축적 등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받았다. 심리적 안정과 생활리듬도 회복했다.
결국 민씨는 최근 고용노동부 서울관악노동지청에 진정을 냈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 민씨는 “늦은 시간에도 반갑게 맞아 주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해 준 노무사들에게 깊이 감사하다”면서 “덕분에 포기 대신 선택을, 두려움 대신 용기를, 혼란 대신 절차를 배웠다”고 말했다.
#. 3개월씩 근로계약, 결국 부당해고된 경비노동자들
서 모씨 외 2명은 ㅂ종합관리 소속으로 2023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매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며 격일제로 서울 노원구 소재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했다.
서씨 등은 지난해 8월 23일 출근하자마자 사전예고도 없이 반장에게 해고통지서에 사인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9월 24일 부사장과 반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영상 이유로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해고 사유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해고된 경비원들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신규 채용돼 정상근무 중이었다.
서씨 등 3명의 경비원은 억울한 마음에 ‘노원구 노동복지센터’를 찾아 하소연했다. 부당해고로 판단한 노무사는 관련 근로계약·근로내역 등 증빙자료를 정리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측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자료까지 작성·보완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서울지노위는 서씨 등 경비원의 손을 들어줬다. 서씨 등은 부당해고에 갈음한 임금 상당액과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았다.
#. 임금통장이 보이스피싱 계좌로 막힌 외국인 노동자
강원 동해시에서 일하던 필리핀 출신 외국인 노동자 A씨는 한달에 하루도 쉬지 못하는 노동환경에서 2년 가까이 일하다가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퇴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고된 노동에 지친 A씨가 회사에 나오지 않자 사업주는 A씨의 임금통장을 보이스피싱 계좌로 은행에 신고해 지급정지시켰다. 사업주는 지급정지를 해제하려면 퇴직금을 포기하라는 각서를 강요했다.
2000여만원이 통장에 묶인 A씨는 자신의 사정을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사회관계망에 알렸다. 한 이주노동자가 충북 음성노동인권센터로 연결시켜 줬다. 지난 7월 센터를 찾은 A씨의 상황을 파악한 상담사는 즉각 해당 은행에 자초지정을 이야기해 지급정지를 풀었다.
또한 A씨가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부당노동행위를 당해온 사실을 파악하고 강릉고용노동지청에 진정서를 냈다. 강릉 이주인권센터 등 노동단체들과 A씨의 권리구제를 사회 문제화했다.
결국 A씨는 퇴직금 등 3000만원에 달하는 미지급 임금을 받았고 사업주는 노동청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및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처벌을 받았다. 지난 10월 필리핀으로 출국한 A씨는 “한국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당당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금…나에게도 있었던 권리였다
충남 홍성군 50대 박 모씨는 2020년 11월에 처음으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야간 4시간 파트타임으로 시작해 2023년에는 주간근무로 하루에 8시간씩 일했다. 5년 동안 사업주는 10분이라도 일찍 퇴근하면 주휴수당을 주지 않았다. 2024년까지는 상시 노동자수가 5명이 넘어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음에도 가산수당과 연차휴가도 주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요청하지도 않은 퇴직금을 정산해줬다. 이때 2023년 2월까지 야간근무했던 기간이 제외된 것을 알았다. 박씨는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도,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뒤늦게 알게 된 그녀는 사업주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 보험도 가입했다.
올해 6월 사업주는 갑자기 계약기간 만료라며 해고를 통보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도 하고 억울했다. 딸의 권유로 충남노동권인센터를 찾은 박씨는 상담사를 통해 사업주가 왜 근로계약서를 안 쓰려고 했는지, 세금을 아껴주겠다면서 박씨와 딸의 통장으로 나눠서 월급을 준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상담사는 사건경위를 정리해주고 노무사 선임도 도와줬다. 박씨는 센터와 권리구제지원단 노무사의 도움으로 보령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내고 청구한 1287만원 전액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는 “이제는 더 이상 참고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타국에서 산재사고, 국적은 다르지만 노동자의 가치는 같다
올해 1월 방글라데시 국적의 B씨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다. 전북 전주 덕진구 작은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금속판 연마공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갔다.
입사 한달 만인 2월 19일 밤, 베트남 동료와 함께 60kg가량의 금속판을 옮기던 중 오른손 검지가 금속판에 눌렸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손가락은 붓고 통증은 심해졌다. 출근해 사장에게 전날 있었던 사고를 알렸다. 사장은 “당분간 쉬라”면서 치료나 산업재해 신청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B씨는 스스로 찾은 병원에서 ‘오른손 검지 끝뼈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B씨는 회사에 “손가락을 다쳐서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했더니 회사는 “일 하다가 다친 게 아닌데 거짓말을 한다”며 경찰과 대사관에 알리겠다고 겁을 줬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다. B씨는 전주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를 소개받아 3월 19일 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B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믿을 만하니 산재를 신청해달라”고 사측에 권유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하고 2개월 정도면 완치되는 B씨에게 “일을 못하면 6개월간 쉬라”면서 휴직서를 강요하고 산재 신청을 내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B씨는 그동안 일을 하지 못한 데다 산재 인정도 못 받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센터의 끈질긴 노력 끝에 8월 1일 근로복지공단 전주지사로부터 B씨의 사고를 산재로 인정받았다. 5개월 만에 얻어낸 결과였다. B씨는 요양비와 휴업수당 등 533여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B씨는 “나 같은 외국인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