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발 세계경제 충격, AI 투자로 완화

2025-12-02 13:00:01 게재

올해 빅테크 설비투자 4000억달러 ··· 세계 성장률 되살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4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를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글로벌 경기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수입 감소로 세계 수출·고용이 줄어드는 연쇄 타격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관세 여파로 위축될 것이라던 세계 성장률은 오히려 상향 조정되고 있다. 이유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사상 최대 수준의 인공지능(AI) 투자다.

세계무역기구(WTO)는 10월 올해 전세계 상품교역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2.4%로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년 세계 성장률 전망을 2.8%에서 3.2%로 상향했다. 두 기관 모두 수정 배경에 “미국 기술기업들의 대규모 AI 투자 확대”를 지목했다. 아마존·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4대 기업이 올해 AI 관련 설비와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금액만 4000억달러(약 588조원)에 육박한다는 설명이다.

이 자금은 장비·데이터센터·AI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퍼지며 특정 국가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미국 경제 성장률의 최대 절반이 올해 상반기 AI 투자에서 나왔다. IMA아시아는 AI 칩의 핵심 생산기지인 대만의 성장률 전망도 기존 4.4%에서 7%로 크게 올렸다. 대만의 올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30%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역시 메모리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어 AI 공급망 혜택을 받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장비업체 ASML도 수요 급증의 수혜국으로 꼽힌다.

CMC마케츠의 오리아노 리자 트레이더는 “AI 관련 교역 증가의 약 3분의 2가 아시아에서 발생했다”며 “이익이 첨단 제조 역량을 갖춘 일부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AI에 의한 글로벌 경기 부양’은 영구적 현상이 아니라는 경고도 동시에 나온다. 올해 교역량이 일시적으로 뛰어오른 데에는 기업들의 ‘관세 전 앞당겨 반입(frontrunning)’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관세 발효 전에 재고를 쌓으려는 움직임이 미국 수입을 띄워 교역 규모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뱅크오브싱가포르의 만수르 모히우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관세 충격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나타날 뿐”이라며 “앞으로 기업들이 소비자 가격을 올리고 대미 수출을 줄일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WTO는 2026년 세계 상품교역 증가율 전망을 기존 1.8%에서 0.5%로 낮췄다. 올해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 하락 폭이다.

다만 미국과 주요국 정부의 재정정책이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원 빅 뷰티풀 빌(One Big Beautiful Bill)’ 법안은 세금 감면 연장과 재정 지출 확대를 동시에 담고 있어 단기적으로 미국의 수입 수요를 늘릴 수 있다. 독일은 긴축 기조에서 벗어나 지출 확대로 돌아섰고, 일본도 최근 1350억달러 규모 경기 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달러 약세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관세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2026년에도 세계 경기가 버틸 여력이 생긴다는 전망이다. 모히우딘 이코노미스트는 “AI 호황이 꺼지지만 않는다면 현재 투자 환경은 여전히 우호적”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미국이 관세로 세계 경제를 흔들었지만, 빅테크의 AI 투자가 그 충격을 되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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