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정명가도와 다카이치 일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동북아시아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살얼음같은 현안들이 많은 이 지역에 정치 지도자들의 리스크가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돌출 발언은 당분간 깊고 긴 파장으로 번질 조짐이다.
총리 발언 이후 일본에 불리한 조치가 이어짐에 따라 발언이 실수가 아닌가 하는 막연한 짐작이 나왔다. 그러나 반대로 의도된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최근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자리에서도 “발언 진의 왜곡” “발언 내용의 과도한 해석” 등 정치인들의 상투적 화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야당 의원이 당시) 구체적인 사례를 물었기 때문에 나는 성실히 답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해협의 분쟁 발생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총리가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를 공식 거론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사전에 준비를 했으며, 신중을 기했으리라는 것을 일반인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은 직접 무력 공격을 받는 경우와 달리 미국같은 밀접한 국가가 무력 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존립위기 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해 군사행동에 나서게 된다. 2015년 아베 신조 내각이 안보법제를 개정하면서 도입한 개념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여자 아베’라는 별칭답게 아베 총리가 도입한 ‘우경화 업적’의 실행에 적극적이다.
다카이치 대만 발언에 동북아 곳곳 파열음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1개월을 겨우 넘어섰지만 강경한 우경 언동을 자주 보였다.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하는 무기수출과 관련해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을 조속히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안전보장 환경의 가속도적인 변화를 이유로 일본 안보 관련 주요 문서를 앞당겨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일본이 안보문서를 개정할 때마다 ‘평화헌법’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자위대의 역할을 넓혀 논란을 낳았다. 한국에는 독도문제를 상기시키고자 두바이 에어쇼에 참가하는 비행기의 중간 급유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우경화 사고를 현실정치에 서둘러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은 어떤 의도로 나온 것인가. 이 발언이 중국을 격분시킬 것이라는 예상은 총리를 비롯한 일본 국민이 다 아는 상식이다. 중국은 대만을 제1의 국익으로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리가 없다. 예상대로 여행자 송출, 수산물 수입 제한 등의 조치가 중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지만 일본 국내에서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70% 내외의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일본 극우파들은 이것을 노렸다.
주지하듯이 일본은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35년간 이어지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일본은 세계 경제 대국 2위의 자리를 중국에 내어준 지 오래다. 1인당 국내 총생산에서도 한국에 뒤지고 있다. 일본인 표현대로 2류 국가로 전락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우파들은 나름대로의 경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 내용에는 대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통화 양적완화, 재정확대, 저금리·엔저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이는 수입 물가를 높이고 생활비를 압박하고 노후 복지예산을 삭감하게 된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사항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다.
대중의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갓 출범한 정권의 지지율을 낮추지 않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긴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만해협 문제의 거론은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반면, 일본인에게는 중국을 공적으로 각인시키면서 결집을 의도하고 있다. 중국이 보복 조치로 경제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일본 서민 경제의 타격을 노리고 있다.
보수우익 세력 겨냥한 정치적 계산에 기초
다카이치 총리의 대외적 발언은 최소한 보수우익 세력을 겨냥한 정치적 계산에 기초하고 있다. 이 발언은 임진왜란 시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연상케 한다. 도요토미는 전국시대 영주들의 남은 권력을 약화시킬 정치적 목적으로 조선과의 전쟁터에 이들을 몰아넣으면서 보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중국 명나라 정벌을 선전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일간 긴장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애꿎은 피해를 볼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