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수소경제, 이젠 제대로 하자

2025-12-03 13:00:03 게재

열역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기술의 시대적 역할을 고민하는 필자에게 수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물질이다. 수소는 어떤 물질보다 단위 질량당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고, 무엇보다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태초부터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지구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해 오고 있는 수소를 화석연료 대안으로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20세기 초, 수소는 식량문제 해결 수단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버-보슈 공정으로 수소를 질소와 결합해 만들어진 암모니아를 원료로 하는 합성비료는 인류의 농업 대전환을 이끌었다. 그후 수소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자동차 매연 문제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도심 공해문제 해결을 위해 무공해 차량 의무판매 정책을 도입했고 2010년대 초반에 수소차가 이 정책의 핵심수단으로 떠오르자 도요타와 현대자동차는 투자를 본격화했다.

그러나 그후 시장의 판도는 급변했다.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수소차는 설 자리를 잃었다. 때마침 우리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2040년까지 수소차 620만대(내수 290만대 포함)를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수소차의 내수 시장을 열어 주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목표와 달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현재 수소차 누적 보급대수는 약 3만 8000여대에 불과하다. 전기차 대비 경쟁력뿐만 아니라 비싼 수소가격과 부족한 충전 인프라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청정수소 생산 단가 낮추기에 총력

정부는 2020년 탄소중립 선언 이후 수소정책의 기조를 청정수소 공급으로 선회했다. 2021년 11월 발표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청정수소 280만톤(국내 100만톤, 해외 180만톤) 공급 목표를 제시하며 탄소중립 이행 수단으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이 역시 성과는 미미하다. 청정수소 생산기술은 여전히 소규모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고 각종 해외 도입 계획도 답보상태다. 야심차게 출발한 청정수소 발전 의무화제도 입찰 시장은 시행 첫해였던 지난해 사실상 흥행에 참패했다. 정부가 제시한 입찰 상한가로는 공급단가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간 주도 사업들도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SK E&S, 효성중공업, 두산에너빌리티 액화수소 플랜트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가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주목받았던 보령 블루수소 프로젝트 역시 해외 가스전 및 이산화탄소 저장소 확보 지연으로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만 믿고 성급한 투자가 낳은 결과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1570개의 청정수소 생산 프로젝트가 발표되었으나 실제로 최종 투자 결정이 이루어진 것은 10%도 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자본 비용의 상승, 불확실한 수요처, 정책 지원의 지연 등이 주요 이유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거품을 걷어내고 수소경제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태생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는 청정수소 생산 단가의 한계 극복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수소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시장이 움직일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수소 공급가격을 낮추지 못한다면 그 어떤 정책 목표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저렴한 수소 가격을 구현할 수 있는 국가가 수소경제를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수소 사용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분야는 제조업 탄소배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제철산업을 포함한 난감축 산업이다. 그런데 국내 최대 철강회사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만이 기업 생존의 유일한 길이라며 국가 차원에서의 대규모 수소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또다시 과다한 수소 공급 정책에 골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요자의 책임 있는 요구와 시장 기반의 현실적인 정책이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보급 목표만 앞세웠던 수소차의 아픔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수소로 환경과 경제전환 이끌어야

빌 게이츠가 존경한다는 역사학자 바츨라프 스밀은 그의 저서 ‘대전환’에서 인류문명의 구조를 변화시킨 다섯가지 전환으로 인구 농업 에너지 환경 경제의 전환을 꼽았다.

20세기 초 수소는 합성비료를 통해 농업과 인구의 전환을 이끌었다. 이제 21세기 수소는 에너지 전환으로 환경 전환과 경제 전환의 촉매가 되어야 한다. 수소경제 선도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수소경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

손정락 카이스트 초빙교수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