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미중의 경쟁적 반자유주의
미중 전략경쟁이 경제력과 군사력 중심의 갈등과 대치를 넘어 가치와 이념의 영역에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가 양쪽 모두에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적 성과를 근거로 권위주의적 발전모델을 글로벌 거버넌스의 대안으로 제시하며 서구의 자유주의 발전모델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의 트럼프정부는 과도한 자유가 건강한 국가발전을 저해한다는 우려에서 학문 언론 무역 이민 등 다양한 영역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다. 미중이 패권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효율을 위한 통제’를 자유보다 우선하려는 현상은 ‘경쟁적 반자유주의(Competitive Anti-Liberalism)’로 불릴 만하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집단지도체제를 통한 합의형 국가운영의 제도화와 함께 2000년대 초에는 향진 단위 직접선거 실험 등 자유 요소를 확대하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자유의 확산이 국가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2010년대 이후 인민민주주의의 민주집중제를 강조하며 당과 국가가 주도하는 하향식 국정운영을 강화하고 자유주의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국정운영은 ‘중국제조 2025’ 등 장기발전전략의 안정적 추진과 효율적 자원동원을 통해 최강 제조대국으로 부상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과학기술에서도 미국과 우열을 다투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개도국들은 이러한 중국의 발전모델에 매력을 느낀다. 서방이 민주 인권 등을 협력조건으로 내세우지만 중국은 국가별 상황에 따른 발전방식의 다양성을 수용하여 거부감도 적다.
중국의 권위주의 국정운영 차용하는 미국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표본이었으나 중국이 권위주의의 체제하에 국가전략산업의 급속한 굴기를 이루고 미국의 우세를 위협하자 견제와 균형의 국정운영, 투명성과 자율성 존중의 기풍에 내재된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중국의 권위주의형 국정운영기법을 차용해 열세를 극복하려는 데 활용하려 한다.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을 지향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시장은 안보를 고려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개입해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공급망을 보호하고 통제해야 한다면서 ‘중국제조 2025’와 유사한 ‘반도체 및 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대중첨단기술투자제한명령’ ‘수출통제조치’ 등을 도입했다.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까지도 국가안보와 사회결속을 위해 통제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중국의 국가안보 지상주의를 닮아가고 있다.
이러한 미중의 헤게모니 경쟁 속에 인류의 근본가치인 자유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물질의 발전이 소중하더라도 자유의 가치가 존중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국가가 물질적 발전을 위해 국력의 증강만 강조하면 세계는 분열의 시대로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면서 체제의 성격이 판이한 중국을 닮아가는 현상은 니체가 ‘괴물과의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한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상대를 제압하는 데 급급하여 권위주의라는 상대의 ‘심연’에 빠져들면 소중한 ‘자유’를 잠식하게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미국은 반자유주의로의 후퇴에 앞서 중국과 다른 자신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토양에 걸맞는 혁신과 발전의 길을 가야 한다. ‘역사의 종말’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치체제의 최종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일상화되면서 육체적 안전과 물질적 축적에만 몰두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기개’를 상실한 ‘최후의 인간(The Last Man)’이 나타나면서 민주주의가 쇠퇴할 수 있다고 한 점을 되새겨야 한다.
중국 또한 국가 주도 발전이 과학기술의 도약과 전략산업의 부상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민간의 활력 위축으로 국가 전체의 부가 위축되고 부채가 늘어나는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유가 가져오는 창의와 열정을 민간이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역동적인 발전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한다. 소련이 국가가 집착하던 군사 분야의 발전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국민경제가 활력을 잃고 국부의 창출이 위축되어 위기를 맞았던 전례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체제 더 활기차게 만드는 쪽이 승자
미중 전략경쟁의 승자는 누가 자신의 체제를 더 매력적이고 활기차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은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억눌려 있는 사회적 활력을 되살려야 구조적인 경제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 미국은 ‘안보’의 명분으로 위축되고 있는 개방성과 혁신성을 되살려야 체제의 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지금의 ‘반자유주의로의 경쟁’을 멈추고 자유와 활력의 총량을 늘리는 ‘경쟁적 자유주의‘로 선회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