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계획’과 ‘개발’ 무엇이 우선인가
‘개발’은 ‘계획’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신개발·재개발·재건축·뉴타운 등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도시개발’은 ‘도시계획’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는 망가지고 본연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지켜낼 수 없게 된다. 정체성을 잃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키우는 일도 어렵게 된다.
종묘 앞 세운상가 일대 초고층 개발 논란의 본질은 ‘계획’을 무시하고 뛰어넘으려는 ‘개발’에 있다. 도시계획을 세워 도시를 지키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시장에게 부여된 기본 책무인데 지금 서울시장은 계획 아닌 개발 편에 서 있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부끄럽게도 역사도시 서울의 심장인 도심부(한양도성안) 도시계획은 1990년대 말까지 부재했다. 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 도시기본계획’은 1960년대에 수립되었지만 오랜 역사성을 보유하고 있는 ‘도심부계획(Downtown Plan)’은 2000년에 이르러 처음 세워졌다.
조 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주재하던 도시계획위원회에 도심재개발 변경안이 상정되었고, 층수 완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도심부계획의 존재를 묻는 위원들의 질문을 받은 시장은 도심부에 오직 재개발계획만 있음을 확인한 뒤 서울연구원에 도심부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1997년의 일이었다. 3년의 준비 끝에 최초의 서울 도심부계획인 ‘서울 도심부 관리 기본계획’이 2000년에 수립되었고, 북촌 인사동 정동 등의 역사적 장소들을 보존하고 재개발구역의 최고 높이를 90m로 제한하는 등 도심부 관리의 기본원칙과 구체적 지침들을 담아냈다. 그 뒤 북촌과 인사동 보전계획과 사업들이 이어진 것도 이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종묘 앞 개발 본질은 ‘계획’ 무시한 ‘개발’
도심부 계획은 그 뒤 몇차례 수정되었지만 기조는 내내 유지되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뒤 청계천 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반영한 ‘서울 도심부 발전계획’이 2004년에 수립되었는데, 최고 높이 90m는 유지되었고 도심부 관리의 원칙도 바뀌지 않았다. 2015년에는 계획 범위를 한양도성 전역으로 확대한 ‘서울 역사도심 기본계획’이 세워졌고 역사 보전의 기조가 한층 강화되었다.
오세훈 시장 취임 뒤인 2023년, 이전 도심부 계획의 명칭에서 ‘역사’란 두 글자가 빠진 ‘서울 도심 기본계획’으로 변경되고, 20여년간 이어져 온 도심부 계획의 기조도 크게 바뀌었다. 지역에 따라 30, 50, 70, 90m로 제한되던 도심부 최고 높이 규제를 풀었고, 녹지확충 등 공공기여를 조건으로 완화할 수 있게 했다. 오랜 기조를 깨고 도심부 고층 개발의 물꼬를 튼 것이다. 종묘 앞 세운4구역의 높이 기준이 두배 가까이 올라가게 된 것도 이에 근거한다.
도시계획도 물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바뀔 때마다 널뛰듯 바뀌어선 안된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도시계획에게 부여된 기능은 ‘사적 욕망에 대한 공적 제어’로 요약할 수 있다. 토지 소유주의 재산권 행사는 존중하되, 공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보루역할이 곧 도시계획에 부여된 임무다. 런던 파리 워싱턴DC 베이징 도쿄 등의 역사도시들은 모두 엄격한 도시계획을 세워 개발을 관리하고 있고 특정 개발을 명분으로 도시계획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매우 강하고 까다로운 도시계획 규제를 지속하고 있다. 언덕 도시의 풍경이 깨지지 않고,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도시 전역에 최고 높이를 지정하고, 건물의 최대 전면폭과 대각선 길이까지 제한한다. 바이블처럼 존중되는 도시계획의 틀 안에서 민간은 오히려 더 큰 창의를 발휘해 개발과 건설을 이어간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이 유지되는 것이다.
도시계획 본질은 사적 욕망에 대한 공적 제어
도시계획 규제는 중첩될 수 있다.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 용도지역에 따른 용적률과 높이 규제는 모든 도시지역에 적용되고,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 구역에서는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규제도 함께 준수해야 한다. 문화재 주변의 토지는 문화재 보호를 위한 또 다른 규제를 받게 되고, 세계유산과 관련된 의무사항이 적용되는 곳이라면 이것 또한 함께 준수해야 한다. 여러 층으로 촘촘히 짜인 도시계획이 있어서 도시의 매력이 오래 지켜지는 것이다.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로 도시계획을 무시하고 바꿔버린다면 도시의 정체성도 경쟁력도 지켜낼 수 없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늘 위태롭다. 왜 그럴까? 계획의 틀 안에서 개발을 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개발이 늘 계획을 무시하려 들기 때문이다. 일반주거지역인 송현공원 자리에 상업지역에서나 가능한 호텔을 짓겠다고 밀어붙인다. 25년을 이어온 서울 도심부 계획의 기조도 지금 개발의 위협 앞에 놓여있다. 계획이 무너지면, 결국 그다음엔 도시가 무너진다. 그러하니 지켜야 한다. 도시도, 계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