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환율상승이 서학개미 때문이라고?

2025-12-04 13:00:04 게재

최근 원달러환율은 1470원대에서 오르내리며 1500원 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이달 1일 기준 올해 연평균 환율은 1419.16원이다. 1998년의 IMF 외환위기(1395원), 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1276.4원) 당시보다 높은 수준이다. 환율은 금리와 물가, 성장률, 경상수지, 자본 이동, 위험회피 심리까지 모두를 반영한 국가 거시경제 펀더멘털 지표다. 최근 환율상승(원화약세)은 한국경제의 체력 저하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과 실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환율 상승세가 지속되자 지난달 27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고환율의 원인은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 쏠림이 크기 때문”이라며 서학개미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후 정부와 금융당국은 해외주식 양도세 강화 검토와 증권사의 해외주식 영업 실태점검이란 명목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IMF 땐 국민사치를 지적하더니 이젠 서학개미 탓하냐” “예전엔 서학개미를 외화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칭찬하더니 이젠 매국노라 욕하냐”는 등 불만이 터져나왔다. 서학개미보다 기업이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외환 거래 규모가 더 크다는 등의 지적도 나왔다.

그러면 환율상승 원인이 서학개미들의 해외주식투자 때문 만인가. 환율은 시장 수요·공급, 정책금리, 자본이동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변동된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격차와 급격한 유동성 증가, 국내 기업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작년부터 이어진 미중 무역갈등, 프랑스와 일본의 정치불안으로 외환시장 변동성은 지속되어 왔다.

특히 최근 1~2개월간에는 위안화 약세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취임 이후 엔화 약세로 인한 달러 강세 영향, 3500억달러 대미투자금 조달 우려 등의 이유가 더 컸다.

서학개미들의 해외투자가 환율에 일정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대응책을 찾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서학개미에게 화살을 돌리기에 앞서 왜 그들이 떠났는지 먼저 살펴볼 일이다.

서학개미들은 지난달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기술주에 몰리며 AI·반도체·빅테크 관련 종목을 8조원 넘게 사들였다. 이들 기업의 견조한 이익 성장, AI 설비 투자 붐, 주주환원 증가, 완화적인 재정정책 등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특정 주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환율위기를 막는 방법은 한국경제 신뢰도를 높이고 국내 주식시장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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