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한국경제 전환의 기회와 위험
1470원대를 넘나드는 환율이 외환당국과 금융시장 참여자들, 그리고 실수요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4월 8일 연중 최고치 1486.5원(매매기준율 기준)을 기록한 환율은 6월 30일에는 1354.0원까지 내려왔다. 분석기사들은 환율이 급락할 가능성마저 언급하고 있었다. 이런 전망과 달리 7월 이후 환율은 상승해서 11월 13일 1471.0원까지 급등했고, 대략 그 언저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나 외환당국은 환율을 상승시킨 주체로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는 국민연금과 서학개미, 그리고 환전하지 않고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수출기업을 점찍은 듯하다. 여기에 국내기관투자자들의 해외증권투자까지 문제삼고 있다.
이에 당국은 환율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이 어떻게든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표면적으로는 부정하지만 내심 서학개미의 투자에 세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도 모색하는 듯하다. 수출기업을 대상으로는 정기적으로 원화 환전내역 제출을 요구하기로 한 모양이다. 해외투자를 부추길 수 있는 증권사의 해외투자상품 마케팅 행태까지 특별 점검한다고 한다.
지난 7월과 비교해 보면 환율급락과 급등이 냄비물 끓듯하는 시장의 움직임에 뭔가는 해야겠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어느 것 하나 합리적인 해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금 환율수준, 한국경제 펀더멘털 반영
이에 반해 다수의 전문가들을 인용하거나 설문에 바탕을 둔 분석들은 한미간 금리차이, 달러 통화량의 증가를 훨씬 넘어서는 원화통화량의 팽창, 그리고 한미간의 성장률 격차 등 경제의 펀더멘털을 지적한다.
현재의 환율 수준은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든 서학개미든 그렇게 움직이는 합리적인 이유, 즉 투자수익률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별 투자자의 행위에 개입하는 정부당국의 미봉책으로는 환율수준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마땅한 정책이나 대책을 찾기 어렵고 정책적인 딜레마가 있을 때는 허둥지둥 뭔가 하려 하기보다는 관점을 바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미국 연준(Fed)이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해 한미간 금리차이가 줄어들 수도 있는 일이고,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환율이 급등했을 때 기업들(특히 조선업체)의 환헤지물량이 쏟아지면서 환율이 급락했던 일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투자자의 해외자산이 늘며 선진국형 외환시장구조가 자리잡았다”고 했듯이 당장 경제위기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선진국형 외환시장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이 무엇인가 따져서 거기에 부합하는 정책적 대응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까지 29개월째 경상수지는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 고환율은 11월 기준 사상최대 규모의 수출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올해 연간수출은 사상 최초로 7000억달러를 넘어서 일본의 작년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누적되는 경상수지흑자는 같은 크기의 대외순자산 증가로 나타난다. 만약 이 대외자산이 해외투자로 빠져나가지 않은 채 국내 외환시장에 유입되어 환전되었더라면 확장적 재정기조속에서 그 과잉 유동성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었을까. 환율급등이 차라리 나은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들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산업화가 마무리된 이후 산업화시기에 축적된 자산을 투자하는 단계로 전환되는 경향을 발견하곤 한다. 혹자는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 혹은 자산자본주의로의 전환, 또 다른 이는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의 전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부의 존재 형태 혹은 부의 축적방식이 실물자산에서 비실물자산(금융자산을 대표로 하는 무형자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영국이 그러했고 가까이는 1960년대 말을 지나면서 제조업 최강국의 지위를 잃고 금융자본주의로 다시 태어난 미국경제가 그런 길을 걸었다.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도 이 전환의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투자의 시대'에 걸맞게 정책 전환을
이제 한국경제는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화를 마무리지었고, 부동산 등 실물중심으로 부를 형성하고 축적하는 방식은 지속하기 어렵다. 11월 하순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우리나라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은 1조562억달러다. 순대외자산이 양(+)으로 돌아선 2014년의 127억달러와 비교해 보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급증하는 대외자산을 어떻게 관리, 운용해새로운 선순환을 만들까하는 것이 당면한 정책과제다. 그리고 자산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임금소득의 비중을 줄이게 되므로 임금소득에만 의존한 계층에게는 부정적이다. 점점 심각해질 부의 불평등은 함께 오는 사회적 위험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