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구리 확보 경쟁 치열…가격 급등세

2025-12-04 13:00:14 게재

데이터센터발 수요 증가

광산 노후화로 공급 부족

인공지능(AI) 확산과 전력망 강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구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각국 기업과 정부는 필요한 만큼의 구리를 확보하는 데 점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광산의 노후화가 심해지고, 새로운 광산 개발은 느리고 복잡해지면서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구리 수요 증가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멕시코 광산업체 그루포 멕시코는 “데이터센터 1메가와트(MW)당 구리 사용량이 27~33톤으로 기존 시설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밝혔다. 전력 사용량이 급증한 대규모 AI 서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송전선·변압기 등 구리 기반 인프라 투자가 함께 늘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는 2050년까지 데이터센터의 구리 사용량이 여섯 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방위산업 수요까지 더해졌다. 소시에테제네랄은 2024년 전 세계 국방비가 2조7000억달러로 9.4% 늘었다고 분석했다. 광산업 기업가 로버트 프리드랜드는 “군수 부문의 구리 사용량은 공개되지 않은 영역이 많아 실제 수요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급 측면은 정체돼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현재 가동 중이거나 계획된 광산만으로는 예상 수요의 70%를 충족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드맥킨지도 2025년 정제 구리 생산이 약 30만4000톤 부족해지며 공급 격차가 2026년엔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칠레·페루 등 주요 산지에서도 문제는 누적되고 있다. 칠레 국영기업 코드엘코(Codelco)의 막시모 파체코 회장은 “구리를 캐내는 작업은 해마다 더 어려워지고 비용도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여러 대형 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글렌코어, 안토파가스타 등 주요 기업은 생산 목표를 낮춰 잡았다.

신규 매장지 확보조차 쉽지 않다. IEA는 “1990년 이후 발견된 239개 매장지 중 지난 10년간 새롭게 확인된 곳은 14곳뿐”이라며 탐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프리포트맥모란 CEO 캐슬린 퀼크는 “과거처럼 개발 여지가 풍부한 곳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이제는 더 깊고 외진 곳에서 자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사회적 요인도 공급 지연을 키우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의 ‘레졸루션(Resolution) 광산’은 미국 연간 수요의 25%를 감당할 잠재력이 있지만, 원주민 공동체의 반대와 소송으로 개발이 수년째 멈춰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리를 ‘핵심 광물’로 지정하며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인허가 절차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가공 단계에서도 병목은 풀리지 않는다. 중국은 전 세계 제련능력의 절반을 보유한 최대 가공국으로, 사실상 구리 시장의 공급 맥을 쥐고 있다. 미국은 제련소가 두 곳뿐이라 공급망에 취약한 구조다.

최근 중국 내 제련소가 너무 빠르게 늘어 원광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등 글로벌 공급 균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 불안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10월 이후 구리 가격은 연이어 최고치를 경신하며 톤당 1만1000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2년 전 8500달러 수준이던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한 것이다.

스톤엑스의 나탈리 스콧-그레이는 “2030년 전후 시장이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공급 부족에 들어설 것”이라며 “재고를 보유하거나 생산 능력을 가진 국가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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