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AI 키우겠다며 재생에너지는 막아

2025-12-05 13:00:02 게재

가스·원전 확대론 현실과 괴리

신재생 막히면 전력난 가속화

트럼프 행정부가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신속히 추진하면서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에는 제동을 걸고 있다. 이 두 정책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가 4일(현지시간) 경고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의 로버트 퓰레이 북미 전력 담당 책임자는 “향후 10년 동안 신재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AI 확산 속도가 기존 전력회사들의 발전소 건설 속도를 훨씬 앞지르면서 메타와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발전소 계약을 체결하거나 임시시설까지 동원해 전력 수요를 맞추고 있다.

에너지 데이터업체 클린뷰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계획 중인 신규 발전용량의 약 80%가 신재생에너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천연가스와 원전은 14%에 불과하다.

백악관 대변인 테일러 로저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천연가스·석탄·원전처럼 신뢰 가능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대하고 있다”며 “불안정한 해상풍력은 AI 글로벌 주도권 확보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금융사 라자드에 따르면 신규 석탄발전의 발전단가는 MWh당 최소 71달러로 태양광·풍력의 38달러보다 훨씬 비싸다. 천연가스는 경제성이 있지만 전 세계 가스터빈의 70%를 공급하는 소수 3개 업체의 생산물량이 이미 예약된 상태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상업적 가동이 이르면 10년 후로 단기 대안이 되기 어렵다.

반면 태양광·풍력·배터리 저장장치는 건설비용과 건설 속도 모두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대기오염 허가가 필요 없어 5년 이내 완공이 가능하며 일부는 1년 반 만에 지어진다. 대형 가스발전소는 평균 3년 반에서 5년이 걸리고 최근 공급망 병목으로 더 길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2023년 이후 유틸리티급 가스발전소 완공 시간이 평균 35% 늘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신재생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고 있다. 북미 최대 규모로 예정됐던 ‘에스메랄다 세븐’ 태양광 단지는 미국 내무부가 지난 10월 환경검토를 취소하면서 재허가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 행정부가 연방 토지 내 대형 태양광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만큼 비슷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5년까지 현재의 3배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한다. 2040년까지 미국이 새로 공급해야 하는 전력 규모는 1억9000만 가구 수준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대형 기술기업들도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 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이 미국 내 인도 예정인 청정에너지 9.6GW를 새로 계약했다. 이는 약 720만 가구 전력량에 해당한다. 신재생 개발업체 AES의 안드레스 글루스키 CEO는 “당장 1~2년 안에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신재생과 배터리”라고 말했다.

우드맥킨지는 트럼프의 빅 뷰티풀 법이 신재생 보조금을 축소했음에도 2034년까지 태양광·풍력·저장장치에서 666GW의 신규 전력이 공급될 것으로 전망한다. 같은 기간 가스발전은 126GW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우드맥킨지의 퓰레이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신재생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접지는 않겠지만 정책의 세부 현장에서는 조용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중국과의 AI 경쟁을 생각하면 신재생 확대를 막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올해 9월까지 신규 전력 설비 중 89%가 신재생이었다고 에너지정보청은 밝혔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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